재스민혁명의 근원지 튀니지가 야당 지도자의 암살로 2년여 만에 최악의 혼란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반정부 파업으로 수도 튀니스를 오가는 항공편 대부분이 취소됐고 전국의 각급 학교가 휴교하고 상당수 은행, 가게는 문을 닫았다.
민주애국자당(DPP)의 지도자 초크리 벨라이드 인권변호사(48)가 6일 암살된 이후 시위와 총파업, 야당의 국회 등원 거부 등으로 튀니지의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8일 AP AF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좌파 정치 연합체 ‘대중전선’도 이끌었던 벨라이드 변호사는 자택을 나서다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쏜 총에 머리와 목 등 4곳에 총격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벨라이드 변호사는 “집권 엔나흐다당이 이슬람 극단주의자(살라피스트)들의 폭력 시위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며 집권당과 살라피스트를 모두 비난해왔다.
야당 지지자 수천 명은 암살 사건 발생 당일부터 수도 튀니스 중심가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튀니스에서 벨라이드의 장례식이 열린 8일 전국에서 수만 명이 운집해 반정부 시위를 계속했다. 앞서 7일 내무부 건물 인근에서 시위대는 “시민은 지금 정권의 몰락을 원한다”는 구호가 나왔다. 2년 전 ‘아랍의 봄’ 시위 때 등장했던 구호다.
튀니스뿐 아니라 가프사와 수스, 실리아나 등 전국에서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7일 오후에서 8일 오전 사이 집권 엔나흐다당 지구당 사무실은 전국에서 10여 곳 이상이 공격을 받았다. 6일에는 진압 경찰 1명이 숨졌다.
대중전선을 비롯한 4개 야당은 암살 사건 당일부터 의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다.
야당 지도자 피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슬람협력기구 정상회담 참석차 이집트 카이로를 방문 중이던 문시프 마르주끼 튀니지 대통령은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해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그는 암살 사건이 발생한 당일 저녁 총리를 통해 즉각적인 개각 계획을 밝혔다. 함마디 지발리 총리는 TV 연설을 통해 “정치인을 배제하고 정파와 무관한 직업 관료를 중심으로 새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총선도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치르기로 했다.
2011년 1월 재스민혁명으로 엘아비딘 벤 알리 전 대통령을 축출한 튀니지에서는 혁명 이후 집권 이슬람주의자들과 야권 세속주의자들 사이의 갈등 등으로 혼란이 계속돼 왔다. 이슬람주의자가 이끄는 집권 연정에 반대하는 야권이 튀니지가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서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마르주끼 대통령이 지난달 내전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다. 실업 문제 해결과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도 끊이지 않았다.
개각 계획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7일 변호사와 판사 등 법조계 인사와 일부 학교 교사가 파업에 나섰고, 8일에는 튀니지 최대 노조 단체인 튀니지노동연맹(UGTT)이 총파업에 들어갔다. UGTT가 총파업을 선언한 것은 1978년 이후 처음이라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전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튀니지의 폭력사태가 확산되고 있어 8, 9일 이틀 동안 튀니지에 있는 프랑스 초중고교 10여 곳에 휴교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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