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많은 가장(家長)을 파탄과 자살로 내몬 개인 연대보증을 일부 폐지하고 법정이자율도 현행 5%에서 3%로 낮추는 방안을 담은 민법 개정 시안을 마련했다. 소비자가 제대로 읽지 않고 동의한 인터넷 약관 중 부당한 내용은 무효화하는 방안도 함께 담았다.
일본 법무성 자문기구인 법제심사회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 중간 시안을 발표했다. 법무성은 의견수렴을 거쳐 빠르면 2015년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 시안이 입법되면 일본 민법은 1896년 제정 이후 처음으로 약 120년 만에 개정된다. 시대 변화에 맞춰 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한 게 특징이다.
시안은 은행이나 대부업자가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요구해온 개인 연대보증을 폐지하기로 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경영자의 친족 등 개인 보증을 담보로 편안하게 대출해 왔던 금융회사의 영업 관행에는 제동이 걸리게 된다. 일본 금융청은 금융회사가 기업의 사업 내용과 장래성을 감안해 대출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소기업 자금 경색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업 약관이 부당한 내용을 담고 있을 때는 이를 무효화하는 방안도 시안에 담았다. 인터넷에서 여행권이나 상품을 구매할 때 기업이 제시한 긴 약관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동의’ 버튼을 클릭했다 나중에 피해를 당하는 소비자가 많은 데 따른 조치다. 구체적으로 소비자가 예측하지 못했던 내용은 ‘불의 조항’으로, 과대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는 ‘부당 조항’으로 구제하기로 했다.
소비자의 약점을 잡아 과다 이익을 챙기거나 판단력이 흐린 노인과 체결한 계약도 무효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일본 민법 90조 ‘공서양속(公序良俗·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 위반’ 규정을 재판소가 원용해 왔지만 조문에 ‘폭리행위’로 아예 명기하기로 한 것이다.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현격한 정보 격차가 있을 때에는 판매자에게 정보 제공 의무를 지우기로 했다. 한국에서 문제가 됐던 키코(KIKO)처럼 복잡한 외환파생상품 등을 판매할 때 금융회사의 책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 밖에 채무 지연 등에 적용하는 법정이율을 현행 연 5%에서 3%로 낮추고 시장 금리 변동에 따라 연간 한 차례 0.5%포인트 폭에서 조정하기로 했다.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법정이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정 시안에 대해 기업들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종 개정안에 이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될지 주목된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기업 대출에 대해서는 연대보증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다만 2008년 7월 이후 개인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연대보증을 세울 수 없도록 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시중은행과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개인사업자 연대보증도 없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토론회에서 “패자 부활을 막는 연대보증을 없애야 한다”며 연대보증의 폐해를 지적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일부 남은 연대보증도 폐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당 약관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고객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시정조치를 내리는 등 제재 권한을 갖고 있다. 이는 전자상거래 등 인터넷을 포함한 온·오프라인 약관에 대해 똑같이 적용된다. 부당 약관에 대해 공정위는 신고에 따른 조사뿐 아니라 상시적으로 직권조사도 벌이고 있다.
또 법정 이율 인하 문제와 관련해 법원 관계자는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기 회복 추이를 살펴본 뒤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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