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인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추기경단 선거회의)에 참여하는 추기경 115명이 12일 오후 4시 30분(한국시간 13일 0시 30분) 투표 시작에 앞서 이탈리아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였다. 추기경들이 입장한 15분 뒤 투표에 대한 비밀 엄수와 외부의 개입 배제를 약속하는 서약이 이어졌다. 투표 자격이 있는 추기경을 제외한 관계자들이 모두 빠져나온 후 성당 문이 굳게 잠겼다. 가톨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투표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달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598년 만에 자진 사임을 발표해 지구촌에 충격을 던진 지 한 달여 만이다. 교황청 주변에선 주말 전까지 차기 교황이 선출돼 17일 즉위 미사를 집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모두에게 큰 축제”
이날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는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른 아침 뜨거운 태양이 솟아오르자 광장에는 가족 및 단체 관광객, 20대 젊은 여행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전 10시 성 베드로 성당에서 시작된 교황 선출 청원 미사는 광장에 마련된 4대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후 갑자기 천둥이 치고 우박과 소나기가 수차례 쏟아졌지만 군중은 순식간에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콘클라베를 직접 느끼고 싶어 시칠리아에서 왔다는 다비데 마리오 씨(50)는 “이탈리아 추기경이 되면 더 좋겠지만 누가 교황이 돼도 상관없다. 새 교황의 탄생은 바티칸과 이탈리아의 큰 영광이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기쁨”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배낭여행을 온 임미정 씨(21)는 “로마와 바티칸 주변을 천천히 여행하면서 콘클라베 결과를 기다려 이왕이면 교황 즉위 미사까지 보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장 남쪽의 한 피자 레스토랑 직원은 “평소보다 관광객과 손님이 50% 이상 늘었다. 콘클라베가 길어지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6000명의 취재진이 각국에서 몰려들었다.
○ 세속 정치판 못지않아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은 선거 전날까지도 마지막 합종연횡에 분주했다. 지난주 추기경단 전체회의 기간에 오후에는 바티칸 주변 커피숍과 레스토랑에서 각국 추기경들이 서로 만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전했다.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추기경들간 의견 교환과 이견 조율은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밤에 이뤄진다. 2005년에는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파 추기경들이 숙소에서 부동표 결집 작업을 했다는 게 정설이다. 또 당시에는 안젤로 스콜라 이탈리아 추기경이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거나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군사정권과 결탁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폭로전도 있었다. 교황 선거가 세속의 정치판 못지않게 혼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에는 교황이 돼선 안 될 추기경 12명의 명단을 발표한 ‘사제 성추행 피해자 네트워크(SNAP)’가 성 베드로 광장과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내 사제 성추행 피해자 지원 단체인 ‘가톨릭연합’은 “추기경단이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머지않아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신자들의 행렬을 마주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교황청 주변에서는 일반 권력 투쟁과 비슷한 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 WP “교황의 신성함 사라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교황의 자진 사임과 성추문, 부패 등 각종 교황청 스캔들로 교황의 신성성(神聖性)은 사라졌다”고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차기 교황이 누가 되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비신성화’된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세기 중반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년)가 집권할 때만 해도 신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성인과 같이 생각했지만 이런 암투와 스캔들로 교황의 신성성이 무뎌졌다는 것.
미 가톨릭계 주간지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애널리스트로도 활동하는 토머스 리스 신부는 “교황은 ‘신과 인간의 중재자’이기 때문에 오직 한 명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신자들은 전임 교황과 새 교황 등 두 명의 신의 중재자가 공존하는 현실에 혼란을 느낄 수 있고 이는 교회의 권위를 해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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