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D허위제보 “이라크 출신 ‘커브볼’이 美-英정보당국 갖고 놀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0일 03시 00분


BBC이라크전 탐사 다큐… WMD 허위제보 과정 추적

미국과 영국 정부가 10년 전 이라크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는 양국 정보당국이 암호명 ‘커브볼’로 불린 망명자 등 2명의 이라크 출신에게 농락당한 결과라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세계를 바보로 만든 스파이들’이란 제목으로 18일 탐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파노라마’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커브볼의 본명은 라피드 아흐마드 알완 알자나비. 1999년 독일로 망명한 그는 “화학공학자로 이라크에 있을 때 서방국가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이동식으로 된 화학실험실을 트럭 위에 싣는 것을 봤다”는 말로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MI6) 정보요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검토하던 양국 정보당국에 새로운 정보가 입수됐다. 마지 무함마드 하리스라는 전직 이라크 정보당국 요원이 요르단에 망명해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 이동식 화학실험실을 만들었고 몇 대의 르노 트럭에 설치까지 했다는 진술이었다.

이후 서방 국가들은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술은 나중에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커브볼은 양국 정보당국의 추궁에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고, 하리스는 요르단에 망명한 이후 자신이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궁핍한 처지에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양국 정보당국이 수집한 정보에는 사담 후세인의 WMD 보유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당국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라크의 전 외교장관이었던 나지 사브리, 이라크 정보기관 수장이었던 타히르 잘릴리 하부시 알티크리티를 각각 접촉해 후세인이 몇몇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WMD는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CIA의 파리지부 담당이었던 빌 머리는 “우린 전쟁 도중에 나온 그 어떤 정보보다 훌륭한 (이라크의 WMD 보유는 거짓) 정보들을 알아냈고, 모두 옳았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정보들은 폐기됐고 이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라크#커브볼#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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