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시민단체(NGO·비정부기구) 죽이기’에 나섰다. 모스크바타임스는 20일 “당국이 최근 전국 NGO 수백 곳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반정부 성향의 NGO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푸틴 대통령의 NGO 탄압이 본격화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사는 러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검찰은 물론이고 연방보안국 국세청 소방당국 소비자보호당국 등 정부 관련 기관이 총동원됐다. 러시아 일간 가제타는 “이달 초부터 모스크바, 펜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로스토프 등 13개 지역에서 단속이 이뤄졌다”며 “수사관이 부족한 지역엔 이웃 지역 인력이 동원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단속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1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노르웨이 환경단체 벨로나 러시아지부 사무실에선 정중한 방식의 조사가 이뤄졌다. 이 단체 대표 니콜라이 리바코프 씨는 “불시에 방문한 수사관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 단체 활동에 대한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수사관들은 마구잡이로 사무실을 뒤지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모스크바타임스는 전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NGO 통제 강화법’ 후속 조치를 지시한 데 따른 것. 이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검찰당국에 법을 따르지 않은 단체에 대한 단속을 2월에 지시함에 따라 3월부터 조사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제정된 이 법은 반정부 성향 NGO의 손발을 묶기 위한 것. 이 법에 따르면 외국의 지원을 받아 정치 활동을 하는 단체는 정부에 ‘외국 기관(Foreign Agent)’으로 등록하고 언론이나 인터넷에 공개하는 모든 자료에 ‘외국 기관’이라고 밝혀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30만 루블(약 1082만 원)의 벌금이나 징역 4년형에 처하게 된다. 러시아에서 ‘외국 기관’은 옛 소련 시절 외국 스파이나 반역자 등에게 붙은 부정적 표현이다.
지난해 11월 법안 발효 이후 이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부당한 처사”라고 비난해왔던 NGO는 ‘보이콧’을 선언하며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인권위원회 소속 단체들은 19일 모스크바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위원회 대표 엘리나 솔두노바 씨는 “공포심을 키우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국외 지원을 받지 않는 단체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된 만큼 정부에 사과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2011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 NGO 탄압 정책을 펼쳐왔다. NGO가 반정부 시위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올해 상반기 내내 단속 작업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는 옛 소련 시절인 1985년경 시민단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재 약 20만 개의 국내외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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