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구하자” 키프로스 국민모금 물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한국 金모으기 운동과 비슷… 종교단체마다 기부 행렬
국외송금 금지-인출 규제… 정부는 자본통제방안 시행

“나라를 살리기 위해 한 푼, 두 푼 모으자.”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던 키프로스에서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과 비슷한 ‘국민 모금 운동’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키프로스 정교회의 크리소스토모스 2세 대주교는 국민에게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하고 “우리가 솔선수범해 정교회의 재산을 국가에 내놓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교회는 자체 자산으로 국채를 사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키프로스에서 자력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한 푼 두 푼 모아 나라를 구하자는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 니코시아의 종교단체에는 구제금융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기부 물결이 줄을 이었다. 일반 국민의 나라 살리기 운동은 유로존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하지만 키프로스 앞에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키프로스 정부가 예금 대량 인출(뱅크 런)을 막기 위해 국외 송금 중지 등을 내용으로 한 자본통제 방안을 마련해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우선 무역 대금 결제를 제외한 일체의 국외 송금이 금지됐다. 해외여행에 가져갈 수 있는 현금 한도도 1회 3000유로(약 426만 원)를 넘지 못하고 외국에서 쓸 수 있는 신용카드 한도는 한 달에 5000유로(약 710만 원)로 제한됐다. 유학생의 인출 한도는 분기별 1만 유로다. 키프로스 국내에서는 한 사람이 하루에 300유로(약 42만6000원)까지만 인출할 수 있다.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업무도 중단되며 정기예금 계좌의 해지는 예금한 은행에 채무를 상환할 때 이외에는 만기 때까지 허용되지 않는다.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이 같은 자본 통제가 시행되는 것은 처음으로 다음 달 3일까지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16일부터 중단된 은행 영업이 다시 시작된 이날 니코시아 시내는 긴장이 가득했다. 영업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로 평소보다 줄었다. 이날 아침부터 현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지점마다 줄을 섰다. 또 지점 곳곳마다 무장한 현금수송 차량들이 돈을 싣고 도착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키프로스의 은행에 거액을 예금한 러시아 부자들이 돈을 찾기 위해 몰리면서 키프로스행 비행기표 품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키프로스은행과 라이키은행에 10만 유로 이상을 예치한 러시아 고객은 약 40%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편 이오아니스 카술리디스 키프로스 외교장관은 27일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경제가 무참히 파괴돼 40년 전 터키가 침공했던 1974년 때와 다름없다”며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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