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BRICS) 개발은행을 만들어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과 유럽에 맞서겠다”는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의 야심 찬 시도가 ‘절반의 성공’으로 일단락됐다. 27일 남아공 더반에서 폐막한 제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이들은 브릭스판 세계은행(WB)인 브릭스 개발은행 설립에 관해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지만 대신 브릭스판 국제통화기금(IMF)인 ‘브릭스 긴급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브릭스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이날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 1000억 달러(약 110조 원)를 출자해 브릭스 국가가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IMF를 대신해 자금을 지원해줄 긴급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이 410억 달러를 내놓고, 인도 브라질 러시아 3개국이 각각 180억 달러, 남아공은 50억 달러를 출연해 1000억 달러를 만든다. IMF는 1945년 설립 당시 자본금 100억 달러로 출발했으며 2012년 9월 기준 자본금은 2380억 달러다.
하지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브릭스 개발은행 설립은 국가별 출연금, 운영 방식, 개발은행 사무국 위치 등에 대한 각국의 시각차가 너무 커 합의에 실패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5개국이 각각 100억 달러를 출자해 자본금 500억 달러를 만들자고 주장한 반면에 나머지 4개국은 긴급기금과 마찬가지로 개발은행의 출연 금액 또한 나라별로 차등화해야 한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5개국은 ‘브릭스’라는 신조어에 묶여 있지만 경제 규모, 정치 체제 등에서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5490억 달러에 이르지만 남아공은 550억 달러로 중국의 1.5%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 역시 중국은 7조9917억 달러에 달하지만 남아공은 중국의 5.3%에 불과한 4199억 달러다.
현실적으로 개발은행 설립 등을 중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지만 나머지 4개국은 중국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내심 불만이고, 중국 역시 혼자 모든 짐을 지는 일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국 상하이(上海) 소재 경영대학원(MBA)인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CEIBS)의 발라 라마사미 교수는 “브릭스 5개국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고 오직 중국만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며 “현재 상태론 미국과 유럽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브릭스 정상회담에 앞서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브릭스 5개국을 사자(브라질) 코끼리(러시아) 버펄로(인도) 코뿔소(중국) 표범(남아공)에 비유하며 각국의 차이가 뚜렷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컨설팅 업체인 프런티어 어드바이저리의 마틴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연에서 사자 코끼리 코뿔소가 연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느냐”며 “브릭스 5개국은 매우 이질적이며 정치적인 공통점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개발은행 설립 실패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이 지난 50년간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온 국제금융 질서에 무조건 끌려가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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