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도 ‘세월이 약’이었던 걸까. 12년 전 테러 발생 이후 보기 어려워졌던 ‘불타는 백악관’ 장면을 담은 할리우드 영화가 잇달아 개봉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주말판인 옵서버는 6일 “이제 미국 관객은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화염에 휩싸인 워싱턴을 구경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하다”고 보도했다.
6월 28일 미국에서 개봉하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화이트 하우스 다운’ 예고편은 국회의사당 건물이 테러집단에 의해 무참히 폭파돼 무너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미사일에 맞아 추락하고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백악관 건물이 붕괴된다. 미국에서 지난달 22일 개봉해 첫 주말 수익 3000만 달러(약 340억 원)로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올림푸스 함락되다(Olympus Has Fallen)’는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공중에서 백악관을 습격해 초토화하고 대통령을 인질로 삼는 이야기다. 지난달 28일 한국에서도 개봉한 ‘지.아이.조 2’에는 백악관을 점령하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이 등장한다.
9·11테러 이후 워싱턴의 붕괴를 묘사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는 빙하기와 대지진 등 지구를 위협하는 자연재해를 다룬 ‘투모로우’(2004년)와 ‘2012’(2012년) 두 편뿐이었다.
2006년 나란히 개봉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플라이트93’과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모두 테러 당시 상황을 직접적으로 조명했지만 자극적인 장면 묘사를 자제하고 인명구조대의 활약 등 휴머니즘을 강조한 이야기에 주력했다.
2001년 10월 개봉 예정이었던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콜래트럴 데미지’가 워싱턴 등 주요 도시 폭탄테러 장면 때문에 5개월간 개봉하지 못한 이후 워싱턴 테러 장면 촬영은 할리우드의 암묵적 터부였다.
잠시드 아크라미 윌리엄패터슨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1996년 에머리히 감독의 ‘인디펜던스 데이’가 외계인 우주선이 백악관을 산산조각 내는 장면을 선보인 뒤 적잖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워싱턴 파괴 장면을 9·11테러 전까지 관습처럼 삽입했다”며 “테러의 흉터가 이제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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