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의료기술은 한국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가 아니다. 환자를 배려하는 한국 의료진의 마음, 성실한 근무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압둘라 알 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보건부 장관은 9일 한국과의 ‘쌍둥이 프로젝트’ 협약식에서 한국에 대한 깊은 신뢰를 여러 번 나타냈다. 그는 1962년 양국 수교 이후 사우디 보건부 장관으로는 처음 한국을 찾았다. 보건의료발전 10년 계획의 동반자로 미국이나 독일이 아니라 한국을 선택한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의료수출 불모지에서 터진 잭팟
중동은 최근까지 의료수출의 불모지로 여겨졌다. 정부가 의료 분야의 전권을 쥐고 있어 민간 병원의 진출이 어려웠다. 현지 공공 의료기관은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세계적인 병원이 위탁 받아 운영 중이다.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한국은 현지 환자를 국내에 유치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쌍둥이 프로젝트가 완전 성사되면 중동을 향한 의료수출에 돌파구가 생기는 셈이다. 400병상급의 지역 메디컬타워 4곳, 심장센터 4곳, 신경기초과학연구소와 같은 센터급 기관 5곳의 건립을 특정 국가가 도맡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병원이 역량을 갖췄지만 중동의 높은 벽을 절감했는데 이번에 큰 기회를 잡게 됐다”며 국내 의료계가 반기는 이유다. 사우디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은 한국 의료진을 포함한 한국인의 성실한 태도였다. 한국은 지난해 사우디 공공병원이나 군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환자를 유치하면서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미국이 거부한 중증 환자를 한국에서 완치시킨 사례 역시 도움이 됐다.
미국이나 독일의 정상급 병원은 중동 국가로부터 천문학적인 운영비를 받지만 서비스 수준은 그만큼 높지 않았다. 이들 병원은 경비 절감을 이유로 파키스탄이나 인도 출신 의료진을 보냈다. 여기서 비롯된 실망감이 한국에는 기회가 됐다.
이태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한국 의료기관에 대한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 다른 중동 국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동 의료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 커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 쌍둥이 프로젝트의 핵심 KFMC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쌍둥이 프로젝트로 어느 정도의 수익이 생길지는 확실치 않다. 양국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금액을 협의하지 않았다. 다만 잠재적 가치는 아주 높다.
우선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 왕립병원(KFMC)에 국내 병원이 대거 진출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이 병원에 들어설 △신경기초과학연구센터 △뇌영상과학센터 △줄기세포 생산·연구시설 △방사능치료센터 △심장과학센터 등 다섯 가지 시설을 국내 병원이 짓고 운영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 의료에 대한 중동의 신뢰도 제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KFMC 건물은 1993년 현대건설이 지었다. 한국 기업이 세운 건물에 한국 의료진이 최첨단 시설을 만들고 고급 인력까지 파견한다는 점에서 의료한류 ‘시즌 2’의 상징적 사례가 된다.
국내 의료계는 쌍둥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감안해 인력과 역량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삼성서울병원은 신경기초과학연구센터를 ‘아바타 마우스’ 연구의 산실로 만들 계획이다. 아바타 마우스는 난치성 암 치료약의 개발에 필요한 임상실험용 쥐를 말한다. 맞춤형 암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꼭 필요하다. 줄기세포 연구도 병행한다.
아바타 마우스 연구를 주도하는 삼성서울병원의 남도현 교수(난치암연구사업단장·신경외과)는 “쌍둥이 프로젝트는 한국과 중동의 관계에서 ‘제3의 물결’과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970년대에는 중동에 노동자를 보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수출했다면 2013년에는 의료기술을 수출하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뜻이다.
가천대 길병원은 킹파드 왕립병원에 뇌영상과학센터를 짓는다. 이 병원의 이명철 병원장은 “21세기에는 치매, 파킨슨병, 정신질환 등 뇌질환이 중요한 분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심장과학센터는 서울대병원이 맡는다. 현지 연구진과 심장과학을 공동연구할 방침. 줄기세포 연구·생산시설은 의약·의료전문기업인 파미셀이 담당한다. 방사능치료센터는 원자력병원이 설립한 뒤, 방사능 피폭자 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관련 치료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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