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솔로몬의 재판’ 美전역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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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3세 여아 양육권 놓고 기른정-낳은정 갈등에 인종 문제까지 얽히고설켜

양부 맷 카포비앙코 씨가 베로니카와 함께 살던 시절 베로니카를 감싸 안고 즐거워하고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대법원 판결로 베로니카를 내준 그는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냈다. 사진 출처 ‘더 포스트 앤 쿠리어’
양부 맷 카포비앙코 씨가 베로니카와 함께 살던 시절 베로니카를 감싸 안고 즐거워하고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대법원 판결로 베로니카를 내준 그는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냈다. 사진 출처 ‘더 포스트 앤 쿠리어’
“베로니카의 탯줄을 직접 잘랐어요. 우리가 유일한 부모입니다.”

“친모(親母)가 입양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내 딸과 나를 갈라놓지 못해요.”

‘기른 정’과 ‘낳은 정’ 중 무엇이 우선일까. 현대판 ‘솔로몬의 재판’으로 불리는 3세 여아 베로니카의 양육권 소송이 미국을 달구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친부모에게서 태어난 베로니카는 친부모 결별 후 친모의 선택으로 입양됐지만 뒤늦게 친권 소송을 제기한 친부와 살다가 이에 반발한 양부모가 다시 소송을 제기해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베로니카의 친부모인 더스텐 브라운과 크리스티나 말도나도는 2010년 1월 약혼한 상태로 아이를 가졌지만 브라운의 군복무 및 거주지를 놓고 줄곧 다퉜다. 2010년 5월 문자메시지로 브라운에게 약혼 취소를 선언한 말도나도는 한 달 후 또 문자를 보내 “양육비를 지급하거나 당장 친권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브라운은 친권을 포기했고 이라크로 떠났다.

말도나도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던 맷과 멜라니 카포비앙코 부부에게 재정 지원을 받고 입양을 결정했다. 하지만 2011년 귀국한 친부 브라운이 뒤늦게 친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브라운은 “말도나도가 입양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며 “엄마가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친권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상당수 주(州)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이미 친권을 포기했을 때 양부모의 손을 들어준다. 문제는 베로니카의 몸에 1.2%의 인디언 피가 흐른다는 사실. 베로니카의 친모인 말도나도는 히스패닉이지만 친부 브라운은 체로키 인디언의 혈통을 지닌 백인이다. 과거 미국 정부는 서부개척 이후 인디언을 백인에게 동화시키기 위해 인디언 어린이를 부모에게서 강제로 뺏어와 백인 가정에서 자라게 했다. 이런 어두운 역사를 바로잡고 인디언의 정체성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미 정부는 1978년 ‘인디언 어린이복지법’을 만들어 인디언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브라운의 변호사는 이 법을 적극 이용했고 2011년 9월 양부모가 살고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대법원은 브라운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 석 달 후인 2011년 12월 31일 브라운은 카포비앙코 부부로부터 베로니카를 넘겨받았고 이후 오클라호마 주 노와타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딸을 양육하고 있다.

딸을 잃은 카포비앙코 부부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베로니카는 친모 배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와 함께 지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 뒤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다. 반면 친부 브라운은 “부모와 자식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항변했다. 연방대법원은 이번 주부터 재판을 시작한다.

인종, 결혼하지 않은 부모의 친권 범위 등 복잡한 문제가 뒤섞인 이 사건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인디언 혈통이 1.2%에 불과한 베로니카를 인디언으로 볼지, 결혼하지 않은 관계에서 태어난 아기에 대한 친부의 권리는 어디까지인지, 친모 말도나도가 친부 브라운에게 입양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친권 포기 여부를 알려달라고 한 것이 타당한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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