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쓰촨성 5년만에 또 강진]여진 이틀새 1642차례… 울부짖는 쓰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2일 03시 00분


고기정 특파원 中 참사현장 르포
오토바이 타고 산길 달려 닿은 루산… 폐허 속에서 천막 진료소 아수라장
208명 사망-실종… 이재민 150만명

고기정 특파원
고기정 특파원
“구르릉, 구릉….”

지진 발생 하루 뒤인 21일. 진앙이자 가장 큰 피해를 본 중국 쓰촨(四川) 성 야안(雅安) 시 루산(蘆山) 현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여진이 계속됐다. 이날 오후 7시경에는 10분에 한 번꼴로 땅이 흔들렸다.

야안 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로 30여 km를 달려 도착한 루산 현은 융단폭격을 맞은 듯했다. 일부 콘크리트 건물을 제외한 가옥 대부분이 붕괴됐다. 2시간여 사이에 줄잡아 100대 이상의 앰뷸런스가 환자들을 싣고 내달렸다. 줄기차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묻혀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인민해방군 장병과 주민들은 어둠이 깔려오는 와중에도 생존자 수색에 전력을 다했다. 하늘에서는 헬기 2, 3대가 계속 순회하면서 지진 대책본부에 지상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전기가 끊긴 탓인지 병원 주차장에 마련된 천막에서 임시로 환자를 치료한 뒤 인근 도시로 이송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거리에 친 천막에서 밤을 새웠다. 여진으로 건물 붕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도시는 거대한 천막촌으로 변했지만 집을 잃은 주민을 모두 수용하기에 역부족인 듯했다. 일찍 더위가 찾아온 탓에 모기가 들끓고 거리엔 오물이 넘쳐났다. 임시 구호센터에서 배급하는 식사를 얻으려는 주민들의 행렬은 1km가량 이어졌다. 통신사가 이동기지국 차량을 동원한 덕분에 휴대전화 통화는 가능했지만 도시는 어둠 속에서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야안 시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무역로인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시발점. 중국의 상징인 판다의 서식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부상자들 마취제 없어 막대기 악물고 수술 ▼

아름다웠던 도시는 갑작스러운 지진의 습격으로 사실상 폐허로 변했다. 중국 정부는 지진 발생 이후 72시간(황금의 72시간)이 넘으면 생존자 발견 가능성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 매몰자 구조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 사망·실종 200여 명, 부상자 1만 명 넘어서

20일 오전 8시 2분(이하 현지 시간) 쓰촨 성 야안 시 루산 현 룽먼(龍門) 향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강진으로 21일 오후 5시 현재 17개 시와 주, 104개 현에서 사망 및 실종자 208명, 부상자 1만1826명이 발생했다. 중상자 968명은 현재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주택 2만6411채가 부서졌으며 교량도 327개가 손상을 입었다. 이재민은 150여만 명에 이른다. 피해는 특히 야안 시에 집중됐다.

이날 오후 6시 현재 여진은 1642차례 발생했다. 규모 3.0 이상은 78차례, 규모 5.0∼5.9의 여진도 4차례 발생했다.

구조작업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진 발생 당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진앙인 룽먼 향에 도착해 2일간 구조작업을 총지휘했다. 리 총리는 “황금의 72시간 안에 1분 1초도 낭비할 수 없다. 먼저 건물 잔해에 묻힌 사람들을 구하라. 모든 건물을 조사해 한 명도 빠뜨리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정부는 군인과 경찰, 구조대 등 4만3000여 명을 투입해 실종자 수색 및 부상자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다. 쓰촨 성 정부에 따르면 이날 민관 구조대 및 소방대원 등 2만5704명이 구조작업에 나섰다. 수색로봇 3대와 수색견 수십 마리도 동원됐다. 의료팀은 183팀, 약 1500명이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다. 의료진은 추가로 계속 투입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명령에 따라 1만8000명의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이 재해현장에 투입됐다. 새 지도부 출범 한 달여 만에 대형 재해가 발생하자 중국 최고지도부는 민심 안정을 위해 신속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날 현재까지 한국인 피해 상황은 없다고 청두(成都) 주재 한국총영사관은 밝혔다.

○ 추가 재해 발생 우려


이번 지진이 발생한 곳은 쓰촨 분지에서 칭짱(靑藏) 고원에 이르는 산악지역으로 해발이 급격히 높아지는 곳이다. 루산 현만 해도 평균 해발고도 1000∼3500m 지역이 현 면적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현내 최저 고도와 최고 고도 차가 무려 5000m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번 지진이 지역 내 산과 계곡의 지반을 약화시켜 추가 자연재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지진의 영향으로 214개의 저수지(소수력발전소 포함)가 손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 언색호(堰塞湖·산사태로 계곡이 막혀 생기는 호수) 1개가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질학자인 양융(楊勇) 씨는 “이 지역에 작은 수력발전소가 너무 많고 1개는 진앙으로부터 불과 10km 떨어져 있다”며 “이런 발전소들의 상황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특히 야안에는 4월 들어 18일 동안 비가 왔다. 강수량도 4월 1∼19일 93.8mm로 예년의 2배가 넘어 추가 피해 발생이 우려된다.

○ 줄 잇는 안타까운 사연들

루산 현의 한 폐허 속에서 지진 발생 9시간 만에 49세 주부 쩌우한쥔(鄒漢君) 씨가 7세의 아들 양푸전(楊福珍) 군을 품에 안은 채 발견됐다. 양 군은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쩌우 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쩌우 씨는 중국 인터넷에서 ‘위대한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또 지진 발생지인 루산 현과 가까운 산악지대로 도로가 끊겼던 바오싱(寶興) 현 링관(靈關) 진, 융푸(永富) 향, 우룽(五龍) 향 등에선 지진 발생 40여 시간 만인 이날 오후에야 도로가 복구되면서 외부 세계와 연결됐다. 그동안 주민 4만여 명이 사는 링관 진에서는 부상자들을 큰 병원으로 이송하지 못했고 의료품이 턱없이 부족해 일부 부상자는 간이 병원에서 마취제도 없이 나무막대기를 문 채 수술을 받았다.

재해지역으로 인원과 물자가 몰리면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하자 공안부는 허가받지 않은 차량의 재해지역 진입을 막았다.

○ 각국 위로 및 지원의사 쇄도

한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각국은 중국에 위로를 전하고 지원 의사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이번 지진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유가족 등에 대한 위로를 담은 전문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으로 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중국인에게 위로의 뜻을 표하고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로서는 외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루산=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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