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기념관 일반공개 첫날 르포
무역센터 잔해-부시 메가폰 눈길… IT 활용해 쌍방향 소통 유도
‘실패한 대통령’ 논쟁에 정면 대응
“나는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여러분의 말을 듣고 있고 이 빌딩을 무너뜨린 자들도 곧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1일 정오 무렵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 서던메소디스트대 구내. 산뜻한 연황토색 석회암 건물에 들어서자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9·11테러 3일 뒤인 2001년 9월 14일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을 찾아 세계인들에게 외쳤던 유명한 ‘메가폰 연설’이었다. 이곳은 제43대 부시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부시 기념관(도서관 및 박물관)’으로 지난달 2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헌정식이 열렸고 이날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헌정식에 참석했던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지역 내에서 선발된 43명의 어린 학생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았다. C-SPAN과 CBS 등 현지 언론이 일반인 공개 첫날 모습을 중계하는 등 미 정부가 공식적으로 관리하는 13번째 대통령 기념관에 대한 관심은 컸다. 박물관에는 이른 오전부터 주로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부시 대통령 시절을 추억하는 관람객들이 줄을 이어 주차장에 차를 대기 어려울 정도였다. 90대 노인이 60대 아들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기념관 곳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날 하루에 2000명가량의 미국인이 기념관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4052.4m² 넓이의 박물관을 찾은 미국인들은 흉물스럽게 무너져 내린 빌딩의 철골 잔해와 부시 전 대통령이 잡았던 베이지색 메가폰을 직접 보며 12년 전 충격을 다시 떠올리는 듯했다. 40대 흑인 여성 재닛 롱 씨(부동산 관리업)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모든 미국인이 시련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단히 소통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하나였죠. 9·11테러는 미국 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고 돌아보면 잘 대처한 것 같습니다.”
공화당의 아성인 텍사스 출신이지만 평생 민주당원인 롱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공동체에 기여하면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부시 전 대통령의 가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의외의 평가를 내놨다. 박물관은 최신 정보기술(IT)이 제공하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방문객들을 과거로 접속시켰다. ‘결정의 순간 극장(decision points theater)’ 코너를 찾은 방문객들은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처했던 4가지 중대 결정 상황을 직접 체험했다.
기자와 함께 이라크전 개전 결정 코너에 참여한 방문객 20여 명은 4분 동안 터치패드 방식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백악관과 미 중앙정보국(CIA) 참모의 동영상 브리핑을 받았다. CIA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한 증거가 있다고 했고 간간이 ‘긴급 뉴스’를 통해 관련 소식이 전달됐다.
방문객들은 ①유엔을 통한 제재 ②연합군을 통한 개전 ③방관이라는 세 가지 옵션 가운데 ②번을 다수결로 선택했다. ‘실패한 전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방문객들은 여전히 부시 전 대통령의 선택을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이어 2003년 실제로 ②번을 택했던 부시 전 대통령이 동영상에 등장해 “이라크는 번번이 유엔 제재를 무시했다”며 개전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 코너 영상물은 “(이라크 내에서) WMD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뒷날 드러난 CIA의 정보 판단 잘못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후세인이 WMD 개발을 계속할 능력을 가졌던 사실은 확인됐다”고 항변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도 동영상에 등장해 “당신이 9·11테러 사건 당시 당국자였다면 이후의 모든 날은 9월 12일이었을 것”이라며 부시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한편 부시 전 대통령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이날 오전 서던메소디스트대 입구에서 ‘부시를 체포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대학 2학년생인 카일 씨는 “이라크전은 역사상 가장 비효율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해 왔고 기념관 건립으로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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