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 추진 안돼” 장관들 질책… 메드베데프 내각에 불만 커진듯
집권 3기 1주년 맞아 反푸틴 시위… 여론 55% 차기 대선 “새 인물 원해”
8일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 러시아 부총리(49·사진)가 전격 해임됐다. 수르코프 부총리는 푸틴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에 이어 러시아의 3인자로 꼽히는 거물이다. 푸틴 대통령은 7일 각료회의에서 ‘대선 공약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며 장관들을 강하게 질책했고, 수르코프 부총리는 ‘내각이 큰 문제없이 일해 왔다’며 반론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메드베데프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주고받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였던 푸틴과 메드베데프 간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을 만큼 7일로 세 번째 임기 1주년을 맞은 푸틴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암울하다. 2000∼2008년 연임하면서 연평균 7%대의 경제성장률로 인기를 끌었던 그지만 최근 1년간의 경제성적표는 형편없이 초라하다. 게다가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는 각종 조치로 스탈린 시대로 회귀한다는 비난에도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6%에서 2.4%로 낮췄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매년 5%대의 성장률로 ‘강한 러시아’를 부활시키겠다”는 공약을 무색하게 하는 수치다. 러시아의 수출품 가운데 석유와 천연가스가 70.2%(2011년)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직격탄이 됐다.
AFP통신은 “올해 1분기에 1.1%에 머문 경제성장률은 러시아가 급성장하는 나라들로 이뤄진 브릭스(BRICS) 멤버라는 사실을 우습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런던의 캐피털 이코노믹 컨설턴트 그룹은 “푸틴과 메드베데프 정권은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러시아의 경제체질 개선에 아무런 손도 대지 못했다”며 “러시아는 향후 10년간 2∼3%대의 저성장에 머무르는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에 4선에 도전해 20년간 장기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푸틴 대통령이 ‘애국 포퓰리즘’을 3기 행정부의 핵심 통치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을 당과 의회를 초월한 ‘민중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취임 후 주로 인기영합을 위한 정책을 펴왔다. 공무원 월급 인상, 유치원 증설, 군인연금 인상, 무주택 서민 지원 등의 정책으로 올해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에서 각각 3600억 루블(약 12조5000억 원), 5000억 루블(17조4000억 원)의 재정적자가 예상된다고 모스크바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러한 포퓰리즘 정책에도 1, 2기 임기 때 70∼80%대의 고공행진을 달렸던 푸틴의 지지율은 현재 48%가량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 여론조사 회사인 레바다의 조사결과 ‘2018년 푸틴의 4선 가능성’에 대해선 55%가 ‘새로운 인물을 원한다’고 답변했다. 6일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궁 인근 볼로트나야 광장에 8000여 명이 모여 “푸틴은 도둑” “정치범에게 자유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상황은 반푸틴 여론에 영향을 미칠 시민활동가들에 대한 ‘채찍’ 강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푸틴은 지난해 6월 ‘외국 에이전트’법을 만들어 외국의 자금을 지원받는 비정부기구(NGO)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했다. 실제로 선거감시 단체인 ‘골로스’에는 이 법을 적용해 30만 루블(1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올해 3월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NGO 600여 곳이 사찰을 당하고 있으며, 기업인 해외 망명자가 최근 1년 사이에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다. 마샤 게센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메일의 모스크바 특파원은 “지난달 25일 5시간에 걸친 푸틴의 TV 담화를 보고 스탈린주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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