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반미세력 재집권… 美 대테러전 흔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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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리프 총선 승리… 3번째 총리 예약
“미국 주도 대테러전쟁서 빠지겠다” 총선 유세중 공개적 반미노선 천명
아프간 미군 군수품 보급 큰 차질… 무인기 공격도 중단될 가능성 커

파키스탄 총선에서 반미(反美) 성향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가 다시 집권함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등지에서 미국이 벌이는 대테러 전쟁에 커다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샤리프 전 총리는 현 정부의 친미 노선을 강하게 비난해 왔으며 두 번째 총리 시절인 1998년 미국의 강한 반대에도 핵실험을 강행한 바 있다.

샤리프 전 총리는 8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과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에서 빠지겠다”며 “총리가 되면 파키스탄탈레반(TTP)과의 협상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9·11테러 이후 국제테러조직인 알카에다, 이들에 동조하는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내 탈레반을 소탕하기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 왔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 병사 수천 명도 목숨을 잃었다. 샤리프 전 총리는 ‘정부가 미국과 협력하면서 이슬람을 배반했다’는 파키스탄 내 비판이 커지자 재집권을 위해 공개적으로 반미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년 말로 예정된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맞춰 대테러전을 마무리하려는 미국 정부의 향후 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특히 미국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군수품 수송로로 파키스탄 육로를 이용해 왔으나 샤리프의 재집권으로 대안을 찾아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다.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으나 파키스탄 이용 때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게 문제다.

미국의 무인기 공격에도 제동이 걸릴 개연성이 높다. 미국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탈레반에 대해 무인기 공격을 해 왔고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도 이를 사실상 묵인했다. 하지만 무인기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반미 성향의 정권까지 들어서 무인기 공격이 중단될 소지가 크다.

다만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파키스탄의 열악한 경제 상황, 미국이 9·11테러 이후 파키스탄에 약 200억 달러(약 22조 원)의 대규모 원조를 했다는 점, 샤리프 전 총재 또한 재벌 출신이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반미 노선 주창은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샤리프는 현실주의자”라며 “심각한 전력난과 실업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샤리프 전 총리의 재집권이 미국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 내 탈레반의 평화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12일 “파키스탄 새 정부가 아프간 정부와 아프간 탈레반 간 협상 개시에 많은 지원을 해 달라”고 촉구했다.
▼ 건국 66년 만에 사상 첫 민주적 정권 교체 ▼

제1야당 272석 중 130석 확보… 과반실패땐 ‘크리켓 영웅’ 黨과 연정


11일 치러진 파키스탄 총선에서 일약 제2당으로 부상한 테흐리크에인사프(PTI)의 임란 칸 당수. 2008년 부패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총선에 불참했던 그는 이번 총선에서 반미, 부패 척결을 주장하며 큰 인기를 모아 향후 파키스탄 정국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PTI 홈페이지
11일 치러진 파키스탄 총선에서 일약 제2당으로 부상한 테흐리크에인사프(PTI)의 임란 칸 당수. 2008년 부패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총선에 불참했던 그는 이번 총선에서 반미, 부패 척결을 주장하며 큰 인기를 모아 향후 파키스탄 정국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PTI 홈페이지
11일 파키스탄 총선에서 제1야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가 승리해 당수인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64)가 3번째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1990년대 2차례 총리를 지낸 샤리프는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의 부패와 실정으로 권좌를 되찾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은 1947년 파키스탄 건국 이후 66년 만에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파키스탄은 세 번의 군부 쿠데타를 겪었으며 무려 27명의 총리가 단 한 번도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파키스탄 ZEE뉴스는 12일 오전 전체 342석 가운데 여성 및 소수종교 할당 70석을 제외하고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272석 중 PML-N이 130석을 확보해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샤리프 전 총리는 11일 밤 지지자에게 “파키스탄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다시 준 알라께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파키스탄의 국기인 크리켓 스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임란 칸(61)이 이끄는 테흐리크에인사프(PTI·정의를 위한 파키스탄 운동)가 37석을,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현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PPP가 35석을 확보했다. 파키스탄 언론은 “PML-N이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과반 137석 확보에 실패하면 샤리프와 칸이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1949년 펀자브 주의 철강 부호 아들로 태어난 샤리프는 펀자브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 1976년 PML-N에 합류했다. 1990년 11월 총리가 됐으나 부패 혐의로 1993년 7월 당시 굴람 칸 대통령에게 해임됐다. 1997년 2월 두 번째로 총리가 됐으나 1999년 10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육군 참모총장의 쿠데타로 또 실각했다. 이후 8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2007년 9월 귀국해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구시대 인물인 샤리프가 세 번째로 총리가 된 것은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자 현 대통령인 자르다리가 이끄는 PPP의 무능에 대한 국민의 분노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파키스탄의 구매력환산지수(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2900달러(약 319만 원)에 불과하며 국민의 20%는 하루 1∼2달러로 살아가고 있다.

이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파키스탄탈레반(TTP)의 테러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TTP는 선거 유세가 본격화된 4월 이후 잇따라 테러를 자행해 무려 130명 이상을 살해했다.

파키스탄 언론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승자로 일약 제2당 당수가 된 칸 PTI 총재를 꼽았다. 펀자브 주 주도 라호르에서 1952년 태어난 칸은 1992년 크리켓 월드컵에 주장으로 출전해 우승을 일궈낸 국민 영웅이다. 은퇴 후 활발한 자선 활동을 하다 1996년 PTI를 창당했고 2008년 총선에는 무샤라프 전 대통령의 독재에 항의해 불참을 선언하는 등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미국의 무인기 공격에 항의하며 지지자 1500명을 이끌고 파키스탄 서북부로 차량 행진을 벌여 이번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만들었다. 샤리프 전 총리와 지지 기반(펀자브 주)은 물론이고 반미 성향까지 똑같아 향후 샤리프를 위협하는 존재로 주목받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파키스탄#샤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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