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경제권이 미국과 가까운 데다 우파 정권이 집권한 나라가 많은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과 미국과 소원한 데다 좌파 정권이 들어선 나라가 대부분인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Mercosur)’로 양분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창설된 태평양동맹은 불과 11개월의 짧은 역사에도 자유무역주의 강화 및 아시아, 유럽 등과의 경제협력을 강조하며 설립 22년이 넘은 ‘맏형’ 메르코수르의 위치를 빠르게 위협하고 있다.
칠레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등 4개국으로 이뤄진 태평양동맹은 23, 24일 콜롬비아 3대 도시인 칼리 시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회원국 간 교역 품목의 90%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10%의 관세도 향후 7년 안에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미 네 나라 국민은 상대방 국가를 여행할 때 비자가 필요 없으며 칠레 콜롬비아 페루는 3개국 공동 증권거래소도 만들었다. 무관세와 무비자를 통해 상품과 노동력의 이동이 사실상 자유로운 경제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이 4개국의 인구는 2억900만 명,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중남미 전체 GDP의 35%에 이르는 약 2조 달러다. 칠레와 콜롬비아는 좌파 정권이 주도하고 있는 중남미 국가 중 드물게 우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이며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는 미국의 주요 우방이다.
반면 1991년 3월 출범한 메르코수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5개국으로 이뤄졌다. 5개국의 인구는 2억7550만 명, GDP 합계는 중남미 전체의 약 60%인 3조4710억 달러다. 5개국 중 4월 대통령선거에서 우파 후보 오라시오 카르테스가 승리한 파라과이를 제외하면 모두 좌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가톨릭 사제 출신의 좌파 정치인인 페르난도 루고 현 파라과이 대통령은 2008년 4월 대선에서 61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했으나 재집권에 실패했다.
메르코수르가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태평양동맹의 부상으로 위협받는 이유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메르코수르가 경제적 공동체가 아닌 정치적 공동체로 변모했고, 특히 좌파 정권들이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브라질은 최근 몇 년간 중국발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가속되자 철광석 등 자국의 주요 원자재 수출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수출을 제한하고,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중단하는 등 강경 보호주의 정책을 잇달아 집행해 왔다. 세계 주요 20개국(G20)의 글로벌 무역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세계에서 발효된 무역 보호조치 122건 가운데 브라질이 무려 18건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태평양동맹은 자유무역과 개방성을 기치로 내걸고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이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미 코스타리카가 태평양동맹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캐나다, 뉴질랜드 등도 옵서버 자격으로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도 뜨겁다. 미국도 최근 옵서버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페루 칠레와 FTA를 체결한 중국 역시 태평양동맹에 관심이 많다. 중국 경제전문 인터넷매체 이차이왕(一財網)은 “태평양동맹의 부상이 중국과 중남미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수단이 될 것”이라고 26일 보도했다.
브라질 일간지 폴랴데상파울루도 27일 태평양동맹 회원국의 GDP 증가율이 메르코수르 가입국의 GDP 증가율보다 높아 태평양동맹이 메르코수르의 위상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태평양동맹 4개국의 지난해 GDP 증가율 평균치는 4.9%로 메르코수르 5개국의 평균 성장률(2.2%)의 2배 이상이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