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진화훈련을 받은 소방팀을 지칭하는 ‘핫샷(Hotshot)’ 소속의 소방관인 케빈 우이젝(21)은 1일 소방관 선배이자 아버지인 조 우이젝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급히 현장으로 가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들은 다시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지 못했다. 핫샷 동료 18명과 함께 애리조나 주 야넬 지역의 산불 현장에 투입된 케빈은 화재 진압작업을 하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순식간에 덮친 불길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와 함께 투입됐던 동료 중 이날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균 나이 22세인 19명의 소방관은 그렇게 청춘이 말 그대로 불살라졌다.
1일(현지 시간) 최정예 소방관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애리조나 주의 초대형 산불은 2일까지도 잡히지 않았다. 건물 200여 채와 여의도 면적(약 8km²)의 네 배 남짓한 33km²를 태우며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꽃다운 소방관들의 희생 덕분에 산불로 인한 주민 피해는 나오지 않았다.
미국은 자신을 희생한 젊은 MIU(Men In Uniform·제복 입은 사람들)를 기리며 슬픔에 잠겼다. 소방관 아버지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며 소방관의 길을 걸었던 케빈의 사연은 더욱 미국인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 지역의 소방 책임자인 조 우이젝 씨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아버지 같은 멋진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손에 꼭 쥔 채였다.
산불 현장인 프레스콧에 마련된 임시 추모소에는 성조기와 조화(弔花)가 수북이 쌓였다. 화마(火魔) 속에서 괴로워했을 소방관을 생각해 물병 19개를 영정 옆에 나란히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1일 열린 미국 프로야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뉴욕 메츠 경기에서는 숨진 소방관 19명을 기리기 위해 애리조나 덕아웃에 등 번호 19가 새겨진 유니폼을 걸기도 했다.
평소 가족보다도 더 끈끈했던 ‘핫샷’ 소방관들의 생활이 알려지면서 추모객들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희생자의 한 가족은 “그들은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친형제 같았고, 화염과 싸울 때는 늘 함께였다”며 “불길이 그들을 덮친 마지막 순간에도 서로를 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핫샷 대원 20명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1명은 소방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대원들과 떨어져 있다가 화를 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미국은 숨진 소방관들을 시민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아프리카 순방 중 소방관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위험에 뛰어든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소방관들의 숭고한 자기희생 때문에 미국 내에서 소방관은 단순히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닌 ‘안전의 총체적 책임자’로 존경받고 있다. 소방관은 어린 아이들의 희망 직업 1순위도 차지하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예우 차원에서 소방관이 탄 차량은 주차 단속도 하지 않으며 어느 곳에나 출입할 수 있다.
소방관이 희생됐을 때 보상도 ‘영웅’에 걸맞게 해주고 있다. 2001년 9·11테러 당시 희생된 소방관 343명에겐 1인당 평균 40억 원이 보상금으로 지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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