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머먼 사건 촉발” 폐지론 급부상
2005년 플로리다 첫 도입… 31곳 채택, 총기 사용 무제한 허용이 최대 논란
미국에서 흑인 10대 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총격 살해한 조지 지머먼의 무죄 판결에 대한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을 촉발한 ‘정당방위법(stand your ground law)’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16일(현지 시간) 미 최대 흑인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총회 연설에서 “정당방위법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할 때”라며 “이 법은 치안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 법은 정당방위의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며 “우리 사회에 위험한 갈등을 유발하는 법”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어 법무부가 민권 침해 혐의로 이 사건을 계속 조사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흑인인 홀더 장관은 “나도 아들을 가진 사람”이라며 “잘못된 (인종적) 선입견에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며 무죄 판결에 대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2005년 플로리다 주에서 처음 도입된 정당방위법은 상대로부터 심리적 위협을 느끼는 경우에도 총기 등 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6일 “정당방위법은 처음 도입될 때부터 논란이 됐지만 치안 강화를 내세우는 주들이 앞다퉈 채택하면서 현재 31개 주가 정당방위법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플로리다의 정당방위법이 특히 논란을 일으킨 것은 총기의 사용 범위를 자택 이상으로 넓혔다는 점 때문이다. 지머먼이 마틴을 살해한 곳도 자택을 벗어난 곳이었다. 정당방위법 적용 범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넓힌 것이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총을 휴대하고 다니며 위협이 있다고 판단되면 총을 쏠 수 있기 때문. 지머먼도 단지 범죄를 저지를 것 같다는 이유로 마틴을 뒤쫓다가 시비 끝에 살해했으며 정당방위법에 따라 곧바로 경찰에서 풀려났다.
지머먼 무죄 판결에 대한 흑인들의 항의 시위는 대체로 평화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캘리포니아 주 북부 오클랜드와 남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폭력 행위가 벌어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오클랜드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흑인 비중이 가장 큰 도시이고 로스앤젤레스는 1965년 이른바 와츠 폭동과 1992년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두 차례 대규모 인종 갈등에 따른 폭동을 겪은 곳이다.
로스앤젤레스 시위대는 가게 유리창을 부수고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는가 하면 시위를 취재하던 지역 방송국 기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청소년 6명을 포함해 14명이 철창신세를 졌다. 오클랜드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고속도로까지 진출했다. 도로 시설물에 낙서하고 차를 가로막았으며 국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으며 9명을 체포했다.
한편 무죄 판결을 받은 지머먼의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머먼의 부모는 16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법정을 떠난 후 어디에 피신했는지 모른다. 아들이 수많은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 은신 중이며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집에는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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