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를 인수한 제프 베저스를 다룬 11일자 WP 1면 머리기사. 워싱턴포스트 PDF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등 ‘탐사보도의 제왕’으로 불리는 워싱턴포스트(WP)가 새 주인에 대한 탐사보도를 내보냈다. WP는 일요판인 11일자 본지 1면 톱기사와 10, 11면 전면을 털어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 씨가 왜 2억5000만 달러(약 2788억 원)에 WP를 사들였는지를 추적하는 일종의 인물 탐사 기사를 게재했다.
베저스 씨와 아마존 측이 인터뷰를 거절한 상태에서 작성해 보도한 기사는 새 주인을 일방적으로 칭찬하거나 우상화하지 않고 그의 과거 경력에 대한 비판과 미래에 대한 주변의 우려도 가감 없이 전달했다. WP가 신봉해 온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 흔적이 기사 곳곳에 드러나 있다.
기사는 아마존에 고용된 첫 직원이었던 셸 캐펀 씨(컴퓨터 엔지니어)가 베저스 씨의 WP 인수에 대해 “WP가 기업 자유론자의 대변인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는 것은 역겨울 것 같다”고 말한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또 베저스 씨가 창업한 아마존이 이윤 창출을 위해 직원들을 희생시킨 전력을 숨기지 않았다. 직원들이 한여름에 온도가 화씨 100도(섭씨 37.7도)까지 올라간 창고 안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다 쓰러지는 등 아마존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지적한 2011년과 2012년 지역 신문 보도를 인용했다.
베저스 씨의 비공인 전기(傳記)를 쓴 리처드 브랜트 씨는 “그는 신문기자를 피하고 대신 고급 잡지의 기업 및 기술 전문기자들을 선호했다”며 “기자들이 그를 선택하기보다 그가 함께 일할 기자들을 골랐다”며 다소 개방적이지 않은 베저스 씨의 언론관을 소개했다.
기사는 “신문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공공의 신뢰(public trust)’를 의미한다”는 전 주인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의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신문을 소유한다는 것의 중요한 가치는 이윤과 손해를 뛰어넘는다는 중요한 진실을 조용히 타이르기도 했다.
취재에는 중견 기자 6명이 동원됐다. 기사에는 베저스 씨의 어린시절 동네 친구에서 학교 동창, 아마존 직원과 아마존을 취재했던 지역 언론 기자 등 정확히 11명의 실명이 등장한다. 익명의 제보자를 합해 취재원은 수십 명에 이른다고 기사는 밝혔다. 그러나 기사는 베저스 씨가 어린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뭐든 1등을 하려 애썼으며 항상 미래를 꿈꾸며 보통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는 인물이었다는 장점도 전달했다. 능력 없는 직원들은 가차 없이 퇴출시켰지만 유능한 직원들을 가려 뽑기 위해서 면접 때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점수를 물어봤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기사는 애써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베저스에게 WP는 새 프런티어’라는 1면 제목을 통해 새 주인에게 거는 기대감을 대신했다. 신문은 베저스 씨가 아마존을 경영하면서 “그저 고객을 만족스럽게 하는 것을 넘어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고 소개하면서 WP 인수 발표 뒤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독자들의 e메일에도 일일이 답장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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