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서방이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중재안이 논의되는 동안에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유보하겠다고 10일 밝혔다. 그러나 중재안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시리아 정권에 대한 군사행동 압박을 병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9시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러시아의 협조 덕분에 무력 사용 없이 화학무기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고무적인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외교적 해결책이 논의되는 동안 상·하원의 군사개입 결의안 표결을 연기해 줄 것을 의회 지도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중재안의 성공을 예상하는 것은 이르다”며 “외교적 노력이 실패하면 대응할 수 있도록 미군에 군사행동 준비태세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시리아 정권과 다른 독재자들이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법을 무시하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시리아의 동맹국 이란을 더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북한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15분에 걸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연설 시작 10분이 지난 뒤에야 러시아 중재안을 처음 언급하는 등 외교적 노력보다는 군사행동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앞서 존 케리 국무장관도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러시아의 중재안을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재안은 신속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3대 조건을 제시했다.
유엔은 오바마 연설에 앞서 오후 4시 긴급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열어 러시아 중재안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돌연 회의가 취소됐다. 미국과 영국의 동의하에 프랑스가 내놓은 결의안에 러시아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외부에 공개하고 국제 감시하에 두되 이행하지 않으면 사후 군사제재에 나선다’는 프랑스의 결의안에 대해 군사개입 가능성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성명에서 “어떤 경우에도 미국 등 서방의 군사개입은 배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 “러시아가 모처럼 평화조정자로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미국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렇지만 결의안 내용을 놓고 프랑스와 힘겨루기에 들어가면서 러시아의 ‘외교적 승리’는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로운 돌파구의 가능성은 케리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12일로 예정된 스위스 제네바 회동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장관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협상을 벌이고 유엔 안보리 재소집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미 상원은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 8명의 주도로 ‘유엔을 통한 외교적인 노력이 실패했을 때 군사개입에 나선다’는 수정 결의안 마련에 나섰다.
시리아 정부는 이날 러시아 중재안에 대해 “화학무기 시설을 공개하며 생산을 중단할 준비를 마쳤다”며 전폭적인 수용 입장을 밝혔다. 다만 실제적으로 포기할지는 미지수다. 워싱턴포스트의 외교전문 블로거인 맥스 피셔는 10일 “시리아의 약속은 ‘북한식 지연 전술’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숨기려고 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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