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동안 미국 뉴욕 시를 ‘지배’했던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의 후계자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인 빌 디블라지오 뉴욕 시 공익옹호관(52)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0일 뉴욕시장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에서 그는 11일 오전 10시(현지시간) 현재 수 천표의 부재자투표를 제외하고 사실상 개표가 마무리된
가운데(개표율 99%) 유효투표의 40.3%를 득표했다. 결선 투표 없이 민주당 후보로 11월 5일 본선거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40% 득표를 하지 못하면 1,2위 간 결선투표를 치러야 하는데 여부는 부재자 투표 개표가 완료되는 다음주 중 확정될 전망이다. 뉴욕이 미국에서 민주당 지지자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뉴욕 시장을 위한 7분 능선을 넘었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공화당 후보로는 52.6%를 득표한 조지프 로타 전 뉴욕교통공사(MTA) 회장이 결정됐다.
디블라지오는 선거본부가 마련된 브루클린에서 11일 밤 12시 직전 딸 키아라와 아들 단테, 부인 셜레인 매크레이 씨와 함께 연단에 올라 수락연설을 했다. 그는 “지금부터 뉴욕 시민 가운데 누구든 어디에 살든 소득이 많든 적든 간에 소외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뉴욕은 미국을 그리고 세계를 이끄는 도시인 만큼 더 커지고 강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요 선거전략 가운데 하나로 블룸버그 시장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온 불심검문 정책의 폐지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는 ‘인종의 집합소’인 뉴욕에서 소수 인종을 포함해 모든 인종에서 고른 득표를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올해 3월 뉴욕 시장 선거전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는 크리스틴 퀸 뉴욕 시의회 의장과 존 류 감사관의 그늘에 가려 5명의 후보 가운데 존재감조차 없었다. 퀸 의장은 당시 40% 가까운 지지율로 일찌감치 ‘첫 여성 뉴욕 시장’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디블라지오는 중산층 가장의 이미지로 ‘소리 없는 엔진’처럼 유권자들을 훑었다. 특히 섹스팅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한 앤서니 위너 전 연방의원의 표를 흡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디블라지오는 맨해튼 토박이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이 제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 함대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뒤 돌아와 알코올 의존증에 빠졌기 때문이다. 결국 외가에서 생활한 그는 태어날 때 이름인 워런 윌헬름 대신 외가 쪽 이름으로 바꿨다. 뉴욕대와 컬럼비아대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를 마친 그는 1989년 데이비드 딩킨스 전 뉴욕 시장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2000년 힐러리 클린턴 뉴욕 주 상원의원 선거캠프에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뉴욕 시 의원과 미 연방기구인 주택도시건설부 뉴욕뉴저지 국장을 역임했다.
그는 흑인 여성과 결혼해 흑백 결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유권자의 표심을 끌었다. 부인 매크레이 씨는 미 최고의 여대인 웰즐리대 출신이며 딩킨스 전 뉴욕 시장의 연설문 작성 담당 보좌관으로 일하다 남편을 만났다. 매크레이 씨는 “난 동성애자였으며 나를 거기서 벗어나게 해준 사람이 현재의 남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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