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 낳은 침략주의 눈감고 기술만 과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6일 03시 00분


[日 우경화의 뿌리, 현장을 가다]<4>전쟁 반성없는 야마토 박물관

일본 히로시마 현 구레 시 ‘야마토 박물관’에는 태평양전쟁 때 사용된 야마토 전함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1). 박물관 외부에는 구레에서 만들어진 전함에 사용된 대형 스크루 등이 보인다(2). 야마토 박물관은 세계 최대인 야마토 전함의 우수성을 자랑할 뿐 일본의 가해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구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히로시마 현 구레 시 ‘야마토 박물관’에는 태평양전쟁 때 사용된 야마토 전함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이 전시돼 있다(1). 박물관 외부에는 구레에서 만들어진 전함에 사용된 대형 스크루 등이 보인다(2). 야마토 박물관은 세계 최대인 야마토 전함의 우수성을 자랑할 뿐 일본의 가해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구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지난달 22일 일본 히로시마(廣島) 현 히로시마 시에서 전철을 타고 약 35분을 달려 구레(吳) 역에 도착했다. 구레 시는 외국인에겐 무척 생소한 도시이지만 일본 승객 대부분은 이 역에서 내렸다. 일본인 인파를 따라 바다 쪽으로 약 5분 걸어가자 ‘바다의 신’으로 불리는 포세이돈 동상이 보였다. 그 옆으로 포 구경(口徑) 41cm, 4m 길이의 포신과 대형 스크루가 전시돼 있었다. 바로 ‘야마토(大和) 박물관’이다.

야마토 박물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건조한 세계 최대급 전함인 야마토 전함의 모든 것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박물관은 4층 건물에 연면적 9628m²로 조성됐다. 2005년 4월 문을 연 이후 올해 3월까지 방문객 800만 명이 다녀갔다. 하루 평균 2700명이 다녀간 셈이다. 이날도 목요일이었지만 가족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실물을 10분의 1로 축소한 야마토 전함이 시야에 들어왔다. 전함 앞에 서서 V자를 그린 아이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아이들은 야마토 전함을 ‘우주전함’이라 불렀다. 1977년 만들어진 극장용 만화영화 ‘우주전함 야마토’ 영향 때문이다. 침몰한 야마토 전함이 부활해 2199년 우주로 항해한다는 게 영화의 줄거리다.

야마토 박물관은 구레 시 역사부터 설명했다. 구레는 태평양전쟁 당시 군함 및 무기 제조 전진기지로 명성이 높았던 도시였다. 야마토 전함 역시 구레에서 건조됐다.

구레의 역사를 읽던 한 커플이 갑자기 “와∼” 하며 박수를 쳤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선단 호위용 구축함이 부족했다. 1916년 구레는 프랑스로부터 사상 처음 구축함 2척을 주문 받았다.’ 유럽에서 전함과 잠수함을 사 와 분해해 가며 기술력을 익히던 일본이 구축함을 수출했다고 하니 감격에 겨웠던 것이다.

관람객의 감동은 야마토 전함 설명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길이 263m, 최대 폭 38.9m, 만재 배수량 7만2809t, 세계 최대인 28.1인치 함포를 포함한 77문의 포…. 그 옆에는 미국, 러시아 등지의 전함과 규모를 비교하는 표가 있었다. ‘전함 수에서 미국에 뒤지던 일본이 질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야마토 전함을 만들었다’는 설명도 곁들어져 있었다.

박물관은 야마토 전함을 ‘일본 과학 기술의 결정체’라고 치켜세웠다. 용접을 실시해 경량화에 성공했고 공정이 늦으면 전문가를 파견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 기술이 현재 일본의 자동차 산업에 이어져 일본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설명까지 읽은 관람객들은 자부심을 느끼는 듯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초등학생인 이치로(一朗·10) 군은 “야마토 전함과 맞설 수 있는 전함은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30대 남성은 “전쟁 때 전함 건조 기술이 지금 자동차 산업으로 이어진다니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구레에서 만든 133척의 함정과 각종 특수 병기들이 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 사용됐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않거나 외면하는 것 같았다.

‘야마토 전함이 바다를 휘젓던 시절 일본의 아시아 침략 내용은 왜 없느냐’고 직원에게 묻자 그는 “이념적이거나 역사적인 내용을 모두 배제하고 과학 기술 측면에서 야마토 전함을 다뤘다. 가치 판단은 관람객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 야마토 전함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았다. 1941년 12월에 취역해 미드웨이 해전, 필리핀 해전에 참전했지만 뚜렷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미 거대 함선의 시대는 지났고 항공기가 대세였다. 1945년 4월 미군이 오키나와(沖繩)에 상륙하자 야마토는 최후의 출격을 했다. 연료는 편도 분량만 채웠다. 퇴로가 없는 자살 공격이었다. 출항 이튿날인 4월 7일 12시 미국 함대에서 출격한 1000여 대의 전투기가 맹공격을 퍼부었고 대공 방어 능력이 뒤떨어졌던 야마토는 미군기 폭격 두 시간 만에 침몰했다. 승무원 3332명 중 276명만 살아남았다.

야마토 박물관은 ‘평화의 탑’이라는 탈을 쓰고 제국주의의 침략을 부추기는 ‘팔굉일우(八紘一宇) 탑’이나 각 지방의 호국신사처럼 드러내 놓고 침략 전쟁을 미화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본의 가해(加害) 사실은 눈감은 채 일본의 전함 건조 능력만 잔뜩 자랑했다. 식민지 지배와 태평양전쟁으로 주변국들에 엄청난 희생을 강요한 역사 범죄의 증거물이 일본인들에게는 나라의 위용과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역사 현장으로 둔갑해 또다시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다.

구레=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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