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우익, 무라야마 식민사죄 반발해 세운 ‘침략 거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7일 03시 00분


[日 우경화의 뿌리, 현장을 가다]<5·끝>태평양전쟁 정당화하는 대동아성전대비

[1]2000년 8월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에 세워진 대동아성전대비. [2]이 비석의 뒤편에 적힌 ‘팔굉위우’는 전 세계를 일왕 아래 한집안으로 한다는 의미로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할 때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3]비석 설립 단체는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도 비석 건립에 찬성한다고 선전하기 위해 한국인 이름을 본인이나 유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새겨 넣었다. 가나자와=박형준 특파원
[1]2000년 8월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에 세워진 대동아성전대비. [2]이 비석의 뒤편에 적힌 ‘팔굉위우’는 전 세계를 일왕 아래 한집안으로 한다는 의미로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할 때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3]비석 설립 단체는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도 비석 건립에 찬성한다고 선전하기 위해 한국인 이름을 본인이나 유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새겨 넣었다. 가나자와=박형준 특파원
일본 우익 세력들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던 1995년 대형 비석 세우기 운동을 통해 내각과 의회의 과거사 반성 정책을 뒤집어엎는 시도를 했다.

당시 중의원은 “일본이 과거에 행한 행위나 타 국민, 특히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준 고통을 인식하고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한다”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도 식민 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담화를 내놨다.

위기감을 느낀 일본 우익들은 반격의 기회를 찾았다. 이시카와(石川) 현 가나자와(金澤) 시의 우익단체 ‘일본을 지키는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임은 중의원 결의를 ‘망국의 사죄’라 규정짓고 “망국 상태에 대한 반격은 천만 마디 말보다 대비(大碑) 건립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전국적인 모금 운동을 벌여 1억 엔(약 11억 원)을 모았고 2000년 8월 4일 가나자와 시내 한복판에 대형 비석을 세웠다. 바로 ‘대동아성전대비(大東亞聖戰大碑)’다.

12일 이 비석이 세워진 혼다노모리 공원을 찾았다. 비석은 가로 4m, 높이 12m로 버스에서 내리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웅장했다. 정면 윗부분에는 히노마루(일장기) 모양의 붉은 원이 있고 그 아래로 대동아성전대비라 적혀 있다. 침략 전쟁을 미화한 ‘성전’이라는 문구가 비석 정면에 선명하게 새겨진 것이다.

비석의 뒤편에는 ‘팔굉위우(八紘爲宇)’라고 적혀 있었다. 전 세계를 일왕 아래 한 집안으로 한다는 뜻이다. 미야자키(宮崎) 현 미야자키 시에 있는 ‘팔굉일우(八紘一宇) 탑’에 새겨진 문구와 같다. 일본은 이 슬로건을 내세우며 아시아 침략을 자행했다.

참배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1시간 동안 선글라스를 낀 20대 남성, 아기를 안은 부부, 70대 노인 등 3명이 다녀갔을 뿐이었다. 70대 노인에게 비석의 의미를 물었더니 의외로 친절히 답해줬다.

“철저히 우익의 논리를 대변하는 탑이다.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부터 우익의 시각을 담고 있다. 그걸 ‘성전’이라고 했으니 아시아 침략을 옳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은 1941년 말 아시아 침략을 시작하며 “서양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동아전쟁이란 말에는 침략 전쟁이 아니라 식민지 해방전쟁이라는 시각이 담겨 있다.

노인은 “15년 전 모금 운동이 벌어질 때 나도 기부를 했다. 하지만 대놓고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탑이 만들어질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자 “한국에는 참 미안한 탑”이라고 덧붙였다.

비석의 기단(基壇)에는 기부금을 낸 개인 646명과 단체 275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당시 5만 엔의 기부금을 내면 이름 하나를 새길 수 있었다. 꼼꼼히 살펴보니 한국인 9명의 이름도 보였다. 단체 이름에는 박동훈(朴東薰) 김상필(金尙弼) 최정근(崔貞根) 탁경현(卓庚絃) 이왕은(李王垠) 등 5명이 포함돼 있었고, 개인에 한정실(韓鼎實) 이현재(李賢載) 이윤범(李允範) 도봉룡(都鳳龍) 등 4명이 새겨져 있었다.

비석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대동아성전대비 호지(護持)회(옛 ‘일본을 지키는 모임’)에 연락을 했지만 인터뷰를 거절했다. 대신 이 비석의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소속의 야마구치 다카시(山口隆) 씨를 만났다. 그는 “우익들이 비석을 만들며 조선인들도 대동아전쟁에 찬성하고 있다고 선전하기 위해 무단으로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연락이 닿은 유족들은 이름이 새겨진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유족들이 소송을 검토했지만 비용 등 문제로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대동아성전대비 바로 옆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비석이 하나 더 있다. 대동아성전대비는 태평양전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비석의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 8월 4일에 따로 세워졌다.

비석에는 ‘일본은 결코 군국주의나 식민 지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시킨 역사가 있다. 천명에 따른 전쟁이라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이 공원에서 매년 8월 4일 성전 기념행사가 열린다. 매년 지속적으로 행사를 열며 왜곡된 역사를 전파하는 현장이다. 야마구치 씨는 “일본이 우경화되면서 점차 대동아전쟁을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가나자와=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우경화#일본#대동아성전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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