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한국의 영상의학 전문의인 이창근 씨(44·부천 세종병원) 가족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 한복판에 도착했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근무하고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백악관 앞 광장에서는 참전 군인들의 피켓 시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을 돌려 달라’는 피켓을 든 한 참전 군인은 “우리가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 이 지경이 됐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방정부 폐쇄 13일째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시작 예상일(17일)을 나흘 앞두고 무능한 정치권의 독선과 아집을 비판하기 위해 ‘100만 참전용사 행진’이라는 단체가 조직한 시위대가 건너편 내셔널몰에서 백악관으로 막 이동하던 참이었다.
국경일 맞아 서부 유타서 워싱턴 관광行
두 달 전 서부의 유타 주 유타대로 연수를 온 이 씨는 국경일인 콜럼버스데이(14일) 연휴를 맞아 12일 밤 비행기로 뉴욕에 도착해 렌터카를 빌려 타고 이날 새벽 처음 워싱턴을 방문했다. 이날 밤 다시 나이아가라 폭포로 떠나는 여정이었다. 빡빡한 일정이지만 워싱턴에 한나절이라도 머물기로 한 것은 오직 두 아들 영재(12)와 영준(9)이에게 세계 민주정치의 중심부를 꼭 보여주겠다는 욕심에서였다.
하지만 민주, 공화 양당의 극심한 정쟁에 찌든 워싱턴에서는 시민들의 불만이 생각에서 말로, 말에서 물리적 행동으로 터져 나오던 참이었다. 이날 제2차 세계대전 참전기념비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뚫고 들어간 참전용사 수백 명은 백악관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정쟁 격화되니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아”
11일 워싱턴에 모여든 ‘헌법수호를 위한 트럭 운전자’ 모임 회원들이 경적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주요 도로를 통제해 한때 극심한 교통 정체가 빚어졌다. 이 씨는 “워싱턴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정쟁이 격화되니까 미국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매머드의 뼈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던 영재, 백악관 옆 재무부 건물 지하의 국립수족관에서 열대 물고기를 실컷 보겠다던 영준 군의 꿈은 접어야 했다. 부인 전형주 씨(41·고교 교사)는 “아이들에게 좋은 현장교육을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그 대신 재정위기를 맞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역사 현장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료 입장이 가능한 국립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연방정부 폐쇄로 문을 닫아 사설 유료 박물관에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씨 가족도 ‘뭐라도 보고 가자’는 생각에 오후 국제스파이박물관을 찾았지만 줄이 너무 길어 포기했다. 입장료가 12세 이상 어른 20.95달러, 7세 이상 어린이 14.95달러나 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른 워싱턴하버 주변에는 며칠째 내린 비로 포토맥 강의 범람을 우려한 시 당국이 2m가 넘는 대형 물막이 장벽을 둘러쳐 강변 풍경도 볼 수 없었다. 두 아들은 “워싱턴은 너무 답답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씨 가족에게 워싱턴의 첫인상은 혼돈과 생경함 그 자체였다. 워싱턴에서 혼란스러운 한나절을 보낸 두 아들에게 이 씨가 세계가 왜 최강대국 미국의 부도를 우려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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