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이 국가부도(디폴트) 위기를 하루 앞두고 타협에 성공했지만 16일 동안의 연방정부 잠정폐쇄(셧다운) 조치는 적지 않은 경제적 후유증을 남겼다. 또 채무 한도액에 대한 결정을 정치권이 내년 2월까지 미뤄 놓았기 때문에 미국 경제의 먹구름은 상당 기간 걷히지 않고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주가 넘는 셧다운의 피해액이 이미 240억 달러(약 25조7000억 원)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이로 인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0.6%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하면서 소비업계 최대 대목인 연말연시 쇼핑 시즌에 직격탄을 날릴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16일 이뤄진 합의에 따라 상·하원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12월 13일까지 장기적인 재정 건전화를 위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다가올 10년 동안 세수를 늘리고 연방정부 지출을 줄이는 방안이 폭넓게 논의될 예정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셧다운과 국가부도라는 위협이 제거되면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를 토대로 정치권이 내년 2월 7일까지 2014년 예산안과 국가채무 한도 증액 협상을 제대로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 잠시 시간을 번 것일 뿐 복지 재정 확대를 원하는 오바마 행정부와 재정 건전성을 우선시하는 공화당의 근본적인 인식차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뉴욕의 투자은행인 ‘키프브루예트앤드우즈’의 브라이언 가드너 애널리스트는 “12월과 내년 1, 2월에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연방준비제도(Fed)의 출구전략 시기를 예측하는 것도 더욱 어려워져 투자 결정 및 기업전략 수립에 불확실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P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베스 앤 보비노는 “2011년 8월 국가부도 사태 당시 소비자신뢰지수가 3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번에는 당시보다 경제에 미칠 충격이 더 클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는 국가브랜드와 최고의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중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뼈아픈 손실이다. 승자가 없는 ‘상처뿐인 승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구조적으로 국가부도를 볼모로 삼은 정치권의 ‘벼랑 끝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 우려를 던지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최고투자책임자 빌 그로스는 CNBC에 출연해 “워싱턴의 기능 장애는 불치병인 것 같으며 미 국채 투자자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신흥국 시장도 단기적으로 이번 협상 타결에 안도감을 보였지만 결국 향후 3개월 동안 벌어질 미 정치권의 여진(餘震)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 분명하다.
이날 하원의 공화당이 디폴트도 불사하자는 강경파와 일단 시간을 벌자는 온건파로 분열되면서 협상 마지막 날인 16일 상원이 주도한 초당적 합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하원이 표결을 마친 오후 10시 반까지 긴장 속에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 표결에 들어간 상원은 찬성 81명, 반대 18명으로 합의안을 가결했다. 하원도 찬성 285명, 반대 144명으로 역시 합의안을 가결했는데 공화당이 찬성 87명, 반대 144명으로 분열됐던 점이 위기 모면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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