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등 정보 수집 행각을 폭로한 이후 미국에 협조했던 우방국 정보기관의 도청 행각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호주 등 서방세계 정보기관들은 한편으로는 고급 정보를 놓고 서로 경쟁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얻은 정보를 주고받는 협조를 하며 일종의 ‘정보 공유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스노든의 폭로를 특종 보도한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1일 영국의 해외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가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NSA가 지난 3년 동안 최소 1억 파운드(약 1693억 원)의 비밀자금을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GCHQ는 MI5(국내정보담당), 영화 ‘007시리즈’의 모델이 된 MI6(해외정보국)과 함께 영국의 3대 정보기관으로 꼽힌다. 첼트넘에 본부를 둔 GCHQ는 영국 연안을 지나는 환대서양 광케이블과 중동 지역을 지나는 해저 광케이블 등 200개 이상의 광케이블에 접속해 지난해 기준으로 매일 6억 건의 개인정보와 통화를 감청하고 있다.
스노든은 GCHQ의 방대한 도청작전에 대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민간인 감시망”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9년 4월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그해 9월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 때 GCHQ가 각국 대표단의 인터넷과 전화 통신 내용을 감청한 사실이 폭로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GCHQ가 가동하고 있는 10억 파운드 규모의 대형 통신감청 프로젝트 암호명은 ‘시간의 복수’라는 뜻의 라틴어 ‘템포라’다. GCHQ가 해킹한 광케이블에 오가는 정보량은 하루 21페타바이트(1000조 바이트) 이상으로, 영국 도서관 장서에 담긴 정보의 24배에 이른다.
국제 첩보활동 분야의 강자인 프랑스의 해외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대외안보총국(DGSE)도 2011년 말과 2012년 초에 미국 정보기관과 정보 교환 협정을 체결했다고 현지 유력 일간지 르몽드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르몽드에 따르면 DGSE는 파리에 있는 본사 지하에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3층 높이의 슈퍼컴퓨터를 설치해 도청으로 얻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파리 교외지역인 이블린에 1000m² 규모 크기의 통신감청센터를 짓고 있다.
DGSE는 스파이 위성,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오는 수십억 개의 전자정보를 동시에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와 마요트 기지, 지부티와 같은 해외 영토나 옛 식민지에 정보를 수집하는 30개의 위성 안테나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스노든은 독일에서 국내외 정보의 통신감청을 담당하는 기관인 연방정보국(BND)도 그동안 미국 NSA의 정보수집에 협력해 왔다고 폭로했다. 영국의 GCHQ는 내부 보고서에서 BND가 “이미 40∼100Gbps(기가비트) 속도의 일부 광케이블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BND는 향후 5년 동안 1억 유로(약 1434억 원)를 투입해 기술정찰팀 신규 요원을 100명 늘리고 전 세계 인터넷 데이터를 감시할 계획이라고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이 보도했다.
BND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서독 내에서 암약해온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서독인 협조자가 2만 명이 넘는다고 발표해 충격을 줬다. 이 중 7000여 건의 국가반역행위가 적발됐고, 간첩혐의로 300명이 구속될 정도로 정보의 정확도가 높은 기관이다.
이에 앞서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지난달 30, 31일 호주가 미국과 함께 동남아 주재 외교시설에서 광범위한 정보수집 활동을 해왔다고 보도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등까지 미국에 해명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호주와 같이 영연방국가인 캐나다 정보기관도 미국 NSA, 영국 GCHQ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외교적 문제를 피해야 하는 해외 정보 수집은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고 그 능력은 국력에 정확히 비례한다”고 말했다. 능력을 가진 강대국들만 정보를 공유하면서 국제 정보 시장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력이 약해 정보가 없는 약소국들은 ‘강대국 정보 카르텔’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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