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민관(民官) 채널을 총동원해 ‘일본 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법원 판결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외교적 결례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서 한일관계의 경색 국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정무담당 외무심의관은 8일 김규현 외교부 제1차관을 만나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한 판결을 직접 반박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스기야마 심의관은 7일 방한해 ‘한중일 8차 고위급 회의’에 참석한 뒤 이튿날 김 차관을 예방했다. 김 차관이 자신보다 급이 낮은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을 맞아준 일종의 외교적 호의를 일본의 일방적 입장만 전달하는 자리로 활용하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셈이다.
11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고위경제회의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경제담당 외무심의관도 안총기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에게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보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6일 경단련(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민간단체는 ‘양호한 한일경제관계 유지발전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배상 판결에 따르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일본 기업의 배상 문제는 최종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한국 정부가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자”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소송은 대법원 2건, 1·2심 법원에 4건이 계류돼 있다. 더구나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항의한다고 해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 입장만을 반영해 외교적 무리수를 두는 일본 정부의 행태는 다분히 강경 우파의 여론을 염두에 둔 국내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스기야마 심의관은 김 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인근 8개 현 수산물에 대해 내린 금수조치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나가미네 심의관도 11일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금수조치를 내릴 정도로 최근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지 않은 만큼 한국의 금수조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일방적 조치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본은 유엔해양법 협약상 해양 오염수 배출에 관한 ‘통보의무 위반’을 저지른 자신의 잘못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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