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1953년부터 나치 박해자 보상법을 제정해 홀로코스트(인종학살)의 희생자였던 유대인을 비롯해 집시, 동성애자, 생체실험 희생자에게 폭넓은 배상을 실시했다. 배상액은 1990년 말까지 약 1300억 마르크(약 103조7000억 원)에 이른다.
독일 정부도 전시에 일반 기업에서 일했던 ‘외국인 강제노역’에 대한 배상은 거부해 왔다. 나치의 불법행위란 ‘국가 주도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이유나 세계관에서 비롯된 박해’에만 해당하며, 민간기업 강제노역은 현재 일본의 주장처럼 “이미 국가 간 배상으로 마무리됐다”는 논리였다.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정권에 의한 외국인 강제노동 희생자는 1200만∼1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군수산업뿐 아니라 농업, 숙박업 분야는 물론이고 공공관청이나 심지어 교회나 가정에서도 일했다. 이런 외국인 강제노역자는 독일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25%를 차지했다. 그러나 독일이 일본처럼 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사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2000년에 총 100억 마르크(약 7조97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보상했다. 1980년대 후반 나치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미국 법원에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독일 기업들이 잇달아 패소한 것이 계기였다.
국제적 압력 속에 전시에 노동자들을 강제로 동원했던 다임러벤츠, 지멘스, 폴크스바겐 등 대기업 대표들이 모였다. 자칫 천문학적인 액수를 배상해야 하거나 수출 기업의 이미지가 크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독일의 6000개 회사가 50억 마르크, 독일 정부가 50억 마르크를 출연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을 설립했다. 전후에 설립된 중소기업들도 ‘독일 기업의 책임의식’으로 모금에 동참했다. EVZ는 2007년까지 폴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에 있는 강제노동 피해자 166만 명에게 44억 유로(약 6조3076억 원)를 보상했다.
마르틴 살름 EVZ 이사장은 8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일도 국가 간 배상으로 개인 배상이 끝났다고 주장해 왔으나, 유럽 통합 과정에서 더이상 독불장군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며 “동유럽이란 새로운 시장을 얻기 위해선 과거를 털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해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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