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사 환율조작으로 막대한 피해” 한국 기업, 美서 첫 집단소송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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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등 월가 13개 회사 상대로

한국 기업 심텍이 씨티그룹 등 13개 글로벌 금융회
사의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며 미국 연방법원 뉴욕 남부지법에 제출한 소장.
한국 기업 심텍이 씨티그룹 등 13개 글로벌 금융회 사의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며 미국 연방법원 뉴욕 남부지법에 제출한 소장.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한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본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금융회사를 상대로 “환율 조작 피해를 입었다”며 미국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각국 사법당국이 글로벌 금융회사를 상대로 강도 높은 환율 조작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이 처음으로 대응에 나선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 국내 기업도 글로벌 환율 조작에 대응 나서

17일 미 뉴욕 기업소송 전문 로펌인 김&배(Kim&Bae)에 따르면 한국의 전자부품업체인 심텍은 JP모건체이스 바클레이스은행 씨티그룹 크레디트스위스 UBS 등 13개 글로벌 금융회사를 피고로 하는 집단소송을 연방법원 뉴욕 남부지법에 냈다. 심텍은 소장에서 피고 은행의 딜러들이 ‘더 밴디츠(The Bandit’s·노상강도)’클럽과 ‘더 카르텔(The Cartel·담합)’클럽 등으로 알려진 인터넷 채팅룸과 휴대전화 문자 등을 이용해 국제 외환시장의 기준 환율을 조작해 원고 기업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하루 거래량 5조3000억 달러(약 5621조 원)의 국제 외환 시장에서 피고 은행들의 비중이 60%를 차지해 ‘작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미국과 영국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등 각국의 사법 및 금융감독 당국은 수개월에 걸쳐 광범위한 환율 조작 조사를 벌이고 있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8개 대형 금융회사가 환율 조작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조사 대상 금융회사가 15곳으로 늘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전했다. FT는 글로벌 환율 조작 조사에 착수한 각국 기관이 역대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사법당국이 환율 조작을 증언할 내부 트레이더를 한 명 이상 확보했다고 15일 전했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이날 NY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조작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각국 사법당국은 환율 트레이더들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심텍의 법무 대리인을 맡은 김&배의 김봉준 대표변호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미 법무부가 확실한 혐의를 잡지 않고는 조사에 들어가지 않는 만큼 (이번 집단소송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심텍을 대표 당사자로 한 집단소송이어서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본 국내 기업이나 개인은 소송의 원고 자격을 갖는다”고 말했다. 특히 키코는 환율이 계약한 범위를 벗어나면 계약한 기업들이 큰 손실을 보기 때문에 환율 조작이 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텍은 키코로 인해 수백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 환율 조작 소송 줄 이을 듯

심텍의 이번 집단소송은 글로벌 환율 조작 사건과 관련해 미국에서 제기된 두 번째 집단소송이다. 1일 매사추세츠 주의 헤이버힐 퇴직연금이 처음으로 같은 피고 은행을 상대로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며 집단소송을 냈다. 로스앤젤레스의 로펌인 울프 리프킨이 공개적으로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본 원고들과 관련 자료의 수집에 나서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것을 비롯해 관련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대형은행들은 초기에는 각국 금융 당국의 조사에 반발했으나 이번 사안이 민형사 소송으로 번질 경우 미칠 파장을 우려해 적극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 리보(LIBOR·런던은행 간 금리) 조작 사건보다 훨씬 파급력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3월 글로벌 은행들이 리보 조작과 관련해서만 물어야 할 배상액이 1760억 달러(약 186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매쿼리리서치의 자료를 인용해 전망했다.

한편 이번 환율 조작 집단소송이 한국에서 현재 1, 2심에서 계류 중인 270건의 키코 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이다. 키코 피해 기업들이 불완전판매 등을 주장하며 국내 시중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은 9월 사실상 은행 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환율조작#한국기업#미국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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