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안보 분리 접근… 양국 정상이 만나 선순환 만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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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이대로는 안된다]<下>전문가 4인의 제언

《 한일 양국관계 전문가들은 악화된 양국 관계가 더이상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은 양국 모두에 타격인 만큼 조속히 정상화의 길을 찾을 것을 촉구한다. 본보의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시리즈가 시작된 뒤 양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높은 관심을 나타낸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다만 꼬인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해법은 뭘까. 신각수 전 주일대사,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교토산업대 세계문제연구소장) 전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도쿄대 방문연구원으로 일본에 체재 중인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현대한국학연구센터장 등 전문가 4명의 의견을 각각 듣고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한일관계 현주소부터 진단하면

신각수 전 대사(이하 신): 작년 말까지만 해도 정치적으로는 관계가 나빠도 비정치적 분야에서는 교류가 이뤄졌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경제 문화 인적 교류마저 축소되고 있다. 이는 양국 관계의 기반을 갉아먹는 것이다.

기미야 교수(이하 기미야): 일본인 중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역사 인식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꽤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일본을 자꾸 비판하니까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직접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 국민도 ‘아베 정부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도고 전 국장(이하 도고)
: 양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대립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지금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냉전 후 20년간 경기침체로 고생했지만 최근 좋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서로 좀 더 자신과 여유를 갖고 상대를 보면 싸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최근 상대 국민에 대한 호감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충격적이다. 어딘가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다. 빨리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국 정치가와 오피니언 리더도 발언에 유의해야 한다.

―어떤 접근법이 필요할까

이원덕 교수(이하 이)
: 한국 정부가 강제 징용자 문제에 대해 방향을 잘 잡는 게 현재 단계에서 중요하다. 지금까지 일관되게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타결됐다고 해놓고는 국내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이를 뒤집으면 국제 신인도에 문제가 생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견해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이 생긴다.

그렇다고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따르되 정부가 징용자 문제는 국내 조치로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확실히 공표해야 한다. 그러면 어려운 공이 일본으로 넘어간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징용자 보상 문제도 도의적 책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도고: 한일 간에는 여러 현안이 있는데 각각의 현안이 다른 현안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이 현안들을 분리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필요하다. 하나의 현안이 조금이라도 전진하면 다른 사안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악순환을 어디선가 선순환으로 바꿔야 한다.

: 일본이 문제를 만들고 있지만 미국이나 국제사회에서는 우리가 너무 과거사에만 집착해 한일 관계가 악화된다는 시각도 있다. 사실과 괴리된 인식으로, 우리 외교 환경에 별로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한일 관계가 나쁠 때일수록 관리가 필요하다. 만나지 않는 것보다 만나서 우리 요구사항을 직접 전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환경 조성 작업을 양측이 공식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요구하는 것과 일본이 생각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도 본격화할 수 있다.

기미야: 정상회담을 하면 오히려 아베 총리의 앞으로의 말이나 행동에도 제약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 정부는 역사 문제와 외교·안보 정책을 분리해 대화할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 정책은 한국과 관련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일본의 문제다. 역사 문제에서 아베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분리 대응이 필요하다.

도고: 한일 간 현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겠다. 일본은 박 대통령의 어려운 국내 정치적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일본과 타협할 수 있는 입지가 오히려 좁다. 아베 총리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위안부 문제는 복잡한 경위가 있지만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로가 조금씩만 양보하면 된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는 한국인의 기분에 상처를 안 주는 형태로 양국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방법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강제 징용자 소송 문제는 이대로 방치하면 큰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일본은 오히려 이런 기회에 자발적, 도의적으로 기금을 만들어 희생자에게 속죄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상회담 결과가 나쁠 우려 있는데…

: 정상회담을 통해 세 가지 일을 하면 된다. 첫째,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문제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징용자 보상 문제는 한국이 책임지되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책임진다는 식으로 현안 해결의 가닥을 잡는 것이다. 셋째, 미래 협력에 합의하고 분야별 협력 항목을 정하는 것이다. 일본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뒤통수를 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그건 우리가 걱정할 게 아니라 일본의 문제다. 외교적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불명예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기미야: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높지만 일본 국민이 모두 역사인식 때문에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아베 내각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되 나머지 문제에 대해 유화적으로 대화하면 아베 총리를 둘러싼 역사 근본주의 세력도 약해질 것이다.

도고: 40년간 국제정치를 해 온 느낌으로 말하자면 한일 간에 어느 한 부분에서 선순환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1년 이내에 적어도 원래 관계로 돌아갈 것으로 믿는다. 서로 냉정하게 역사의 큰 흐름을 생각하며 지금 분위기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한일관계#정상회담#한국#일본#역사#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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