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일본 도쿄(東京) 주일 대사관에서 발견된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에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희생자가 250명이 포함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가운데 20∼30명에 대해서는 피살 경위가 언급됐는데, 죽창 곡괭이 등을 이용한 잔인한 학살 정황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24일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 등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명부 67권에 수록된 피해자 23만여 명 가운데 간토대지진 때 피살된 수는 250명으로 분석됐다.
250명의 간토대지진 희생자 가운데 피살 정황까지 기록된 것은 10% 남짓.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타살’이라는 간단한 내용만 적혀 있다. 그러나 일부에는 잔인했던 학살 정황이 기록돼 있다. 본적이 울산으로 조사된 박남필 씨(당시 39세)는 ‘곡갱이(곡괭이)로 학살됐음’이라고 적혀 있다. 경남 창녕 출신의 한용선 씨(23세)는 ‘쇠갈쿠리(쇠갈퀴)로 개 잡듯이’라고, 경남 함안이 본적인 차학기 씨(40세)는 ‘일본인이 죽창으로 복부를 찔러 학살했다’는 식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정부 관계자는 “총이나 칼이 아닌 흉기로 자행된 학살은 가해자가 군인이나 경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며 “당시 폭도로 변신한 자경단원과 이에 동조한 일반인들이 저질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경단은 전직 군경 등으로 이뤄진 일종의 ‘반관반민(半官半民)’ 조직이었다.
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에는 290명이 등재돼 있었지만 실제는 198명만 관련 희생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3·1운동 피살자 명부(총 630명) 가운데 52명이 간토대지진 희생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명부 제목과는 달리 두 사건의 피해자가 섞여 있는 것은 1952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명부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작성자의 실수나 부주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2만여 명이 등재된 강제징용 피해자 명부의 경우 끌려간 지역이나 귀환 여부 등이 대부분 정확히 기록된 것으로 분석됐다. 기존의 강제징용 관련 명부에는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귀환 여부가 적혀 있었다. 앞으로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전체 명부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면 구체적인 피해 사실이 추가로 확인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도형 독립기념관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체 명부 분석은 분야별로 적어도 1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결과에 따라 독립유공자나 피해자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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