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네덜란드와 중국인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연행했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 법무성 자료 6점을 최근 새로 발견해 발표한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 간토학원대 교수(일본근현대사 전공)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료조차 조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발견한 자료 내용은….
“일본 패전 후 네덜란드 정부와 중국 국민당 정부가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진행한 4건의 전범 재판 공소장과 판결문이다. 1993년 고노 담화의 토대가 된 일본 정부 조사 자료에서 빠져 있던 것이다. 일본 정부의 강제성을 입증하는 자료가 스마랑 사건(일본군이 1944년 인도네시아 자바 섬 스마랑 근교에 억류돼 있던 네덜란드 여성 최소 24명을 위안소로 연행해 강제 매춘을 시킨 사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런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고치겠다면 오히려 강제성을 확실히 인정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하야시 교수가 건넨 자료는 당시 일본군의 강제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 군법회의에 제출된 네덜란드 여성 심문조서에는 ‘일본 헌병에 잡혀 위안소로 끌려갔다. 계속 있을지 일본군의 애인이 될지 선택하라고 강요당했다’고 적혀 있다. 일본군 육군 중장이 강간과 부녀 유괴 등 혐의로 재판받은 ‘난징(南京) 12호 사건’ 기소장에는 “딸을 폭력으로 끌고 와 육체적 위안 도구로 삼았다”는 기술이, ‘상하이(上海) 136호 사건’ 기소장에는 ‘부녀자 수십 명을 납치해 장교들이 간음했다’는 기술이 있다.
―우익들은 한국인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집에서 강제적으로 끌고 갔다는 문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범죄자가 범죄 사실을 문서로 남길 리 없다. 하지만 취업시켜 준다고 속여서 끌고 가 감금 상태에서 매춘을 강제했다면 이 역시 강제다. 유괴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위안부들이 감금 상태에서 매춘을 강요당했다는 자료와 문서, 증언은 수두룩하다. 일본 군인의 증언도 많다. 데려갈 때 강제성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다. 면사무소 간부나 경찰이 거짓 취업을 권유하면서 ‘네가 안 가면 가족이 힘들다’는 식으로 회유했다.
증언이라서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본 정부는 증언만으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 피해자를 인정했다. 일본 경찰은 일부 피해자에 대해 ‘감언으로 속여서 북한으로 데려갔다’면서 이를 모두 납치 사건으로 발표했다. 북한에 감금된 상태를 중요시한 것이다. 일본인 납치 사건 역시 북한 관련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은 그래서 이 사건을 부정할 것인가.”
―우익들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이유는 뭔가.
“일본이라는 국가가 나쁜 짓을 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위안부와 난징 사건을 부인하고 식민지 지배 때 좋은 일도 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애국심도 아닌 잘못된 에고이즘(이기주의)이다. 이들이 세계에서 일본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다.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 보상해야 한다. 민간기금으로 어물쩍 해결하겠다는 것은 국가 범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발상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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