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만델라의 꿈은 이제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해소로 완성돼야 한다.”
1994년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철폐한 이후에도 남아공의 경제적 불균형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9일 남아공 국회는 만델라의 정치적 유산을 기리는 특별 국회를 개최했다. 남아공 여야 정치인들은 만델라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적 통합을 넘어 경제적 불평등과 가난, 부패 추방에 힘을 쏟자는 자성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 ‘만델라 하우스’의 두 얼굴
9일 남아공의 경제중심지 요하네스버그의 명품 쇼핑몰인 샌드턴시티.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빛나는 쇼핑몰 내부의 만델라 광장에 설치된 6m 높이의 만델라 동상 앞에는 수많은 백인과 흑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명품 시계, 보석, 구두 매장의 쇼윈도에도 만델라 사진이 놓여 있다. 현재 남아공에서 만델라의 이름은 40개의 상표에서 쓰이는 ‘명품 브랜드’로도 통한다.
반면 만델라가 지냈던 요하네스버그 남서부 소웨토 지역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8일 ‘국가 기도의 날’에 찾아간 소웨토 주변 골목은 술에 취한 남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흑인 게토(집단거주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요하네스버그 북동쪽의 알렉산드라에 있는 만델라의 옛집 주변은 더 심각했다. 이곳은 만델라가 23세의 나이에 고향에서 상경해 처음 정착한 곳. 그는 당시 화장실도 없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집에서 변호사로서 본격적인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이곳의 풍경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델라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요하네스버그 하우턴 지역의 중산층 주택가나 프리토리아의 대통령 집무실 앞 빈소에서처럼 화려한 꽃다발도, 춤추고 노래하는 추모객들을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4년 취임 당시 “모두를 위한 정의와 평화”와 함께 “모두를 위한 일과 빵, 물과 소금에 대한 희망”을 약속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남아공에서는 흑인 중산층이 2배로 확대됐고, 평균소득도 169% 늘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백인가구 평균소득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소득 불균형은 오히려 확대됐다. 1994년 남아공의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55%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엔 상위 10%가 전체의 70%를 차지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특히 하루 1.25달러(약 1316원) 미만으로 연명하는 빈곤층도 26%에 이른다.
소득 불균형은 흑인사회 내부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이웃 나라 짐바브웨에서 온 이주민에게 일자리를 뺏긴 남아공 흑인들이 지난해 170여 차례나 시위를 벌이는 등 ‘흑-흑 갈등’도 심각하다. 요즘 백인들은 수백 채의 고급주택 전체가 전기펜스로 보호되며 24시간 경비가 삼엄한 주거단지를 선호한다. 내부에 골프장, 수영장, 레스토랑 등 호화 시설을 갖춘 곳이다. 지난날 흑인을 격리시키려 했던 백인은 치안 문제 때문에 이제 스스로를 좁은 공간에 가두는 길을 택했다. 돈 많은 흑인들도 강도의 위험을 피해 백인들과 함께 이곳에 같이 살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저소득층 흑인들의 자활을 돕는 단체를 이끄는 도나 카친 사무총장은 “생전에 만났던 만델라가 해준 ‘가난을 만든 것도, 가난을 묵인해 온 것도 사람이다. 노예제도나 아파르트헤이트처럼 가난도 결국 사람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어 본다”고 말했다.
한편 10일 전 세계 70여 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하는 추도식을 앞두고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시내에는 호텔방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3인의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추도식에 참석하는 미국의 비밀경호국은 경호 준비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남아공 정부는 장례기간에 군인 11만 명을 동원해 안전 유지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끄는 한국 조문사절단은 9일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