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수니파의 맏형’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달 핵 협상 타결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이란(시아파)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하는 ‘견제구’를 날렸다.
사우디는 29일 레바논 정부에 무기 구입자금 30억 달러(약 3조1650억 원)를 제공키로 했다. 시아파 반군 헤즈볼라를 격퇴하기 위한 돈이다. 시아파 국가 이란이 같은 종파인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것을 놓아두지 않겠다는 조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우디가 자금을 지원하면서 미국산 무기가 아닌 프랑스산 무기를 구입하라고 조건을 붙인 것이다. ‘시아파 맹주’ 이란과 핵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레바논의 미셸 술레이만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TV 연설에서 “사우디의 이번 지원금은 레바논 사상 최대 규모의 군 전력 지원”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의 지원 금액은 레바논의 2012년 국방예산 17억 달러의 두 배 가까운 규모다.
같은 날 사우디를 방문해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정상회담을 가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프랑스는 레바논의 어떤 요구에도 응할 용의가 있다”며 자국의 무기 구입 계획을 반겼다.
사우디의 이번 지원은 27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신시가지에서 발생한 차량 폭발로 반(反)시리아 인사인 무함마드 샤타 전 재무장관(61)이 숨진 직후 전격 발표됐다. 이 테러는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BBC방송은 “사우디의 레바논군 지원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이는 레바논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힘의 균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3년간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사태도 시아파와 수니파의 맹주 역할을 하는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성격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우디는 레바논 수니파의 후견자로 자처해 왔으며 같은 수니파인 시리아 반군에도 4억 달러어치의 무기와 군수품을 지원해 왔다. 반면 이란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해 왔다.
사우디는 올여름 시리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직접 개입을 피해 온 미국에 실망을 표출하다 프랑스와의 안보 협력을 다져왔다. 사우디와 프랑스는 올여름 이후로 여러 차례 연합군사훈련을 했다. 사우디는 지난달 이란 핵 협상 타결 역시 미국이 이란에 지나치게 양보한 것이라는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 발표된 사우디의 30억 달러 지원은 미국이 2007년 이후 레바논 정부군에 지원한 누적 지원액 10억 달러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레바논군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트럭과 같은 군수품이 대부분이었다. 정교한 무기는 이스라엘을 향해 사용될 수 있다는 미 의회의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한 외교 소식통은 “사우디와 프랑스가 이스라엘의 헤즈볼라에 대한 우려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레바논군 지원에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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