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法’ 美상원도 통과… 日우경화 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사상 처음 행정부로 이송… 아베 압박 수위 높여

미국 연방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16일(현지 시간)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내용이 명시된 법안이 통과됐다. 위안부 관련 법안이 미 의회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원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위안부 결의안 준수 내용이 포함된 2014년 통합 세출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2, 반대 26의 압도적 표 차로 통과시켰다. 법안은 이르면 17일 행정부로 넘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효력이 발생한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공개, 비공개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일본에 전했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를 향해 실망스럽다고 한 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은 것이다.

○ 미 의회 ‘일본 각성 촉구’ 기류 확산

미 외교 소식통은 “이번 법안 통과는 미 정치권에서 일본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은 안보 협력과 과거사 문제는 별개라며 분리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일본의 잇단 우경화 행보가 한미일 삼각동맹의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자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미국을 방문했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 의회와 행정부 학계 등에서 일본에 대한 실망감이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 같은 실망감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 의회에서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것은 마이크 혼다 의원(민주·캘리포니아)과 스티브 이스라엘 의원(민주·뉴욕)이다. 특히 혼다 의원은 이달 초 의회가 개원하자마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분노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의원들 사이에 일본 비판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 한몫했다.

혼다 의원은 16일 본보에 보내온 e메일 성명에서 “하원 세출위원회의 선임자로서 나의 목소리가 법안에 담길 수 있도록 치열하게 싸웠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가 포괄적 사과를 하고 잔인한 체제에 희생당한 수십만 명의 여성의 원한을 배상할 때”라며 “위안부 강제 동원의 공식적인 인정과 고백만이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잔인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힘썼던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혼다 의원이 지난해 6월 7일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위안부 기림비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이번 법안 문구 삽입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지난해 말 연방정부 잠정폐쇄(셧다운)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이번 세출 법안이 마련되자 세출위 소속인 혼다 의원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17일 본보가 법안 통과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위안부) 문제를 정치, 외교 문제화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베 총리는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은 분들에 대해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미 정부 “당사국 도발 삼가라” 경고

미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 역주행에 대해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더는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의 과거사 갈등과 관련해 “당사국들은 도발적 행동을 삼가라”고 촉구했다. 이는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아베 총리의 참배 직후 주일 미국대사관과 국무부가 성명을 통해 밝힌 실망감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이날 방미 중인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잘못된 것으로 실망했다”며 “일본은 독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런 기류가 일본을 압박해 향후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부담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노림수라고 해석한다. 미국이 참배에 실망감을 계속 표명하면서도 후텐마(普天間) 기지 이전 합의에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보이고 존 케리 국무장관이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을 거론하지 않은 것이 근거라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런 해석이 맞다면 미일동맹은 더욱 강화되고 한국의 입지는 좁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정미경 mickey@donga.com
도쿄=배극인 특파원
#위안부법#미국 상원#일본#우경화#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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