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는 ‘쿠에바(동굴)’라 불리는 불법 사설 환전소들이 있다. 요즘 쿠에바 한 곳에서 거래되는 돈은 하루 최소 5만 달러. ‘신흥국 쇼크’의 진원지인 이 나라의 통화(페소화) 가치는 1월 한 달간 20% 이상 급락했다. 외화 고갈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달러화 수요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나라 경제가 파국을 향해 달리는 요즘이 역설적으로 거리의 암달러상들에게는 대목이다. 》
10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나라였던 아르헨티나가 왜 이런 모습으로 전락했을까.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7일 ‘아르헨티나의 비극: 쇠퇴의 세기(A century of decline)’를 통해 그 원인을 추적했다.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부국(富國) 중 하나였다. 프랑스 독일 등 웬만한 유럽 국가보다 국민소득이 높았고 19세기 말부터 40여 년간 연평균 6%의 고성장을 이뤄냈다. 그 중심에는 초원 ‘팜파스’로 대표되는 풍부한 자원이 있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에 유럽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인구의 절반이 이민자로 채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국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1, 2차세계대전과 대공황, 그리고 여러 차례의 군사쿠데타 등 내정 불안을 잇달아 겪으면서 경제는 추락을 거듭했다. 지금은 국민소득 1만 달러의 평범한 중진국으로 유럽은커녕 칠레 우루과이 같은 남미 국가보다도 뒤처진 나라가 됐다. 급기야 2001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고 이후 지금까지 국제금융시장에서 국채 발행도 못 하는 신세다.
이코노미스트는 우선 아르헨티나가 경제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의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 부(富)를 재창출할 만한 산업경쟁력을 쌓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자본 축적이 덜 된 점도 문제였다. 저축률이 낮고 외자 의존도가 높아 외부의 충격에 특히 취약했다.
1946년 집권한 페론 정부(후안 페론 대통령)의 포퓰리즘은 경제의 발목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차 대전 후 각국이 무역 활성화에 나설 무렵, 아르헨티나는 거꾸로 무역장벽을 높였다. 페론 정부의 이런 역주행은 경제의 주된 동력이던 곡물 자원 수출이 서민을 착취해 대기업과 부자의 배만 불린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이 정책은 아르헨티나의 세계 곡물시장 점유율만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기간에 걸친 독재정치와 산업국유화, 재산권 침해도 외국자본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물가상승률 등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지표들도 조작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국제기구들과 마찰을 빚어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 정부는 경제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며 이것이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며 “선진국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가 몰락했던 지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원은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가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다 보면 세계경제가 조금만 흔들려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우리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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