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일본 도쿄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서 이미애 학예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애를 설명하고 있다. 고노담화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자료관은 2005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위안부 기획전’을 열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4일 일본 도쿄(東京) 미나토(港) 구 미나미아자부(南麻布)의 재일한인역사자료관. 19m²(약 6평)의 자그마한 기획전시실 입구엔 큼직한 아시아 지도가 걸려 있었다. 중국 러시아 등에 찍힌 무수히 많은 빨간 점은 동티모르와 사이판까지 퍼져 있었다.
“한국인이 동원됐던 위안소가 설치된 곳입니다. 지금도 자료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빨간 점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이미애 자료관 학예사)
전시실 안에는 위안부들의 사진과 그들의 구술 기록을 모아놓은 플라스틱 액자가 가득했다. 모집업자에게 속아 위안소로 갔다는 증언, 짐승처럼 대우받았던 말 등 과거 기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미 작고한 배봉기 할머니(1914년 출생)는 “여자 소개업자가 ‘남쪽 섬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 입을 벌리고 있으면 바나나가 떨어져 입에 들어온다’고 해서 갔는데 도착한 곳은 오키나와(沖繩) 위안소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부산 출신의 이옥선 할머니(87)는 “중국 옌지(延吉) 시내의 위안소에서 콘돔을 쓰지 않는 장교가 있어서 거절했는데 그것 때문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았다. 도망쳤지만 잡혀서 죽도록 맞아 이가 부러졌다”고 증언했다.
민간업자뿐 아니라 일본 경찰이 위안부를 모집한 증언도 눈에 띄었다. 박영심 할머니(1921년 출생)도 “1937년 일본인 순사의 ‘돈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 난징(南京)의 위안소로 갔다. 위안소에서 임신당하고 그 몸으로 폭탄 속을 헤맸다”는 기록을 남기고 별세했다.
이들의 용기로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군의 만행이 드러나고 있지만 일본은 최근 이 같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일부 극우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차관급 인사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부정했다.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문부과학성 부(副)대신은 3일 고노담화의 수정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해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속이거나 사실을 날조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여러분과 생각이 같다”고 인사말을 했다. 지금까지 아베 정권은 겉으로는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면서도 ‘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는 식으로 잡아떼고 있다. 이젠 내각 인사까지 나서 고노담화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고 고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올해 1월 말 ‘위안부 기획전’을 결정했다. 자료관이 위안부 자료를 전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강덕상 관장은 “고노담화 수정 움직임, 모미이 가쓰토(인井勝人) NHK 회장 등의 망언이 계속되면서 한일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 기획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전은 29일까지 진행된다. 4일 오전 기자가 방문했을 때 극우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차가 1대 서 있었다. 자료관은 5월 10일∼6월 14일 해외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은 안세홍 씨의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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