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키 아키타카(齋木昭隆)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12일 한국을 방문해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협의를 했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이뤄진 최고위급 협의다.
미국에 등 떠밀린 일본은 한국에 대해 적극적 구애(求愛) 공세에 나선 듯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내에서는 “진정성 없는 ‘할리우드 액션’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 “미국의 요구로 일본 외교차관 방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방한은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으로 2월 중순 일본이 한국에 ‘한일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협의 조정을 서두르자’고 제안한 것의 후속 차원”이라고 말했다. 당초 일본은 한국 당국자의 방일 카드를 제시했다가 여의치 않자 일본 차관의 한국 방문으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 내민 손을 선뜻 잡을 수 없다는 태도다. 사이키 차관은 이날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하면서 필요하다면 한미일 3자 정상회담도 고려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반면 한국은 일본의 역사인식 변화가 우선이라는 뜻을 명확히 했다. 결국 3시간에 걸친 회담은 진전 없이 겉돌았다. 사이키 차관은 당초 이틀이던 체류 일정을 내부 사정을 이유로 하루로 단축한 뒤 이날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고노(河野) 담화 검증에 나선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1차 아베 내각의 국회 답변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밝힌 점을 다시 강조했다. 이 발언은 미국의 압력에 밀려 고노 담화의 껍데기는 유지하지만 반성과 사죄의 내용에 대한 흠집 내기는 계속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베는 2007년 3월 “정부가 발견한 자료들 중 군이나 관헌(官憲·관청)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나타내는 기술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중국 변수까지 고민해야 하는 한일 정상회담
이달 말에는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가, 4월에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외교청서(靑書)가 발표될 예정이다. 정상회담 직후 일본의 역사왜곡이 반복되면 정치적 역풍을 맞아 ‘긁어 부스럼만 낳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셈이다.
중국 변수도 고려사항이다. 정부 당국자는 “한일 양자 관계는 이미 한중일 3자 구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한국이 의장국을 맡았던 한중일 3국 연례 정상회담도 건너뛴 상황에서 한일 정상만 따로 만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일본에 대한 직접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청와대는 12일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지적한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7일자 보도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의사 표현’을 했다. ‘과거의 유령’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일본은 역사수정주의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미국과의 관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절제를 지키고 있는 인물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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