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키운 범죄… 日 ‘스토커 할배’ 급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8일 03시 00분


작년 1919건… 10년새 4배로 늘어
고립감 달래려 여성에 과도한 집착

“만나주지도 않고 말도 안 들으면 죽여 버리겠어.”

일본 나라(奈良) 현에 사는 79세 여성은 지난해 11월 자택의 부재중 전화에 녹음된 내용을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시무시한 말을 남긴 사람은 와카야마(和歌山) 현 하시모토(橋本) 시의 85세 무직 남성이었다.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2009년 무렵. 여성이 입원해 있는 병실에 남성의 부인도 함께 입원하면서 처음 만났다. 남성은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2011년 무렵부터 여성의 집에 불쑥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은 불편함을 느껴 경찰에 상담을 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말 여성의 집을 찾아가지 말라고 남성에게 경고했다. 그러자 남성은 전화로 만날 것을 종용했다. 그러다가 협박성 말까지 남기게 된 것. 이 남성은 결국 올해 1월 협박 용의자로 나라 현 경찰에 체포됐다.

산케이신문은 7일 이 같은 사연을 전하며 일본에서 고령 스토커(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사람)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커와 관련된 범죄 건수는 2만1089건으로 그중 60대 이상 스토커는 1919건으로 9.1%였다.

고령 스토커는 10년 전인 2003년 473건에 비해 4배 가까이로 급격히 늘었다. 같은 기간 다른 연령대는 1.7∼2.6배로 늘어난 것에 비하면 고령 스토커의 증가 추세는 당국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고령 스토커 피해자는 20∼80대까지 다양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스토커 피해자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NPO)인 ‘휴매니티’의 고바야카와 아키코(小早川明子·여) 이사장은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60대 이상 세대는 심한 경쟁사회를 살아온 사람이 많다. 여성과 달리 퇴직 후 남성은 지역 커뮤니티에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성에게 과도한 기대를 갖고 스토커가 되는 사례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나라 현 경찰에 붙잡힌 남성은 지난해 가을 부인과 사별했다. 나머지 가족과도 대화가 많지 않았다. 외로움은 결국 과격한 스토킹으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휴매니티에는 고령 피해자들의 상담 사례가 늘고 있다. 고바야카와 이사장은 “고령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많다. 그들은 거절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연애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행동을 주체할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고령자들의 절도도 일본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쇼핑을 하면서 물건을 슬쩍 훔치는 일명 ‘만비키(萬引)’는 일본에서 자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이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전형적인 10대 범죄였다. 하지만 2008년부터 60세 이상 만비키로 적발된 인원이 10대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고령 만비키 피의자들의 약 20%는 ‘생활 곤궁’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70%가량은 정확한 이유 없이 그냥 물건을 훔쳤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고독감, 애정 결핍 등을 고령 만비키 범죄의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고령 스토커#고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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