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5시 반경 일본 도쿄(東京) 나가타(永田) 정 총리관저 브리핑룸. 일본 국내외 기자들이 “저게 뭐야”라며 웅성거렸다. 평상시와 달리 단상 뒤에 그림이 그려진 대형 패널 2개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정각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입장했다. 그는 “오늘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로부터 보고서를 받았다. 국민 여러분께 직접 설명하고 싶다”며 운을 뗐다.
이어 옆 패널을 가리키며 “해외에 150만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다. 갑자기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군 함대가 일본인을 이송하다 공격을 당해 일본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무력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자위대는 일본인이 탄 미군 함대를 지킬 수 없다. 이게 현행 헌법의 해석이다”고 말했다. “여러분의 엄마 아빠 손자 손녀 그리고 친구가 이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며 집단적 자위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패널 설치는 아베 총리가 “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겠다”며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그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다. 무장세력이 공격을 해도 자위대가 그들을 구할 수 없다”며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을 이어갔다.
정치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노련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차 아베 내각 때(2006년 9월∼2007년 9월)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과 개헌을 밀어붙이다 참의원 선거 대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2차 내각에선 여론의 향방을 봐가며 능수능란하게 우회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간담회는 이미 2월 초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논의를 끝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3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보고서를 받았다. 보고서에 함구령을 내려놓고 연립 여당인 자민당 및 공명당과 미리 조율하는 데 그만큼 시간을 들인 것이다.
애초 아베 총리는 간담회 보고서에 기초해 ‘정부 방침’을 밝힌 뒤 각료 전원의 합의를 얻는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확정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단적 자위권 허용과 관련해 반대가 찬성보다 더 높게 나오자 또다시 우회했다. 15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방침’이 아니라 ‘기본적 방향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를 일본인 이송과 자원봉사 젊은이 2개 사례로 설명한 것이다. “사례만 언급하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가 대폭 줄어든다”며 측근들 반대도 있었지만 아베 총리는 국민적 반대 돌파에 더 비중을 뒀다. 일단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놓으면 앞으로도 비슷한 방식으로 헌법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의 우회 전략은 이미 수차례 목격됐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총리 취임 후 “전후체제를 탈피하겠다”며 공공연히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헌법 개정 절차를 규정한 ‘헌법 96조’를 수정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헌법 개정 문턱을 낮춰 놓으면 추후 헌법 개정을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무기 수출을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대폭 완화할 때도 이름이 주는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방위장비 수출 3원칙’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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