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부족과 허리케인 피해로 개장이 지연된 미국의 국립 9·11추모박물관과 공원이 13년 만에 문을 연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후대를 위한 추모 및 교육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미국 사회의 의지가 끝내 결실을 봤다. 각종 대형 재난에도 변변한 기념관과 추모시설을 두지 못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버락 오마바 대통령,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 미 지도층과 유족, 소방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15일 뉴욕 맨해튼 월드트레이드센터(WTC) 터에서 개장 기념행사가 열렸다. 민간에는 21일부터 개방된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과 구조를 위해 현장에 뛰어든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9·11을 이해시키는 곳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사를 주관한 뉴욕 뉴저지항만청의 팻 포예 씨는 “후세들에 대한 약속을 끝내 지켰다”고 감격했다. 9·11테러 당시 희생자 탈출을 돕다가 희생된 웰레스 크라우더 씨의 모친 앨리슨 씨 등 유족과 뉴욕소방관 경찰관 등 11명이 연단에 올라 그날의 일을 증언하자 행사장은 숙연해졌다. 뉴욕필하모니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가 울려 퍼지면서 한 시간가량의 행사는 끝났다.
박물관은 지상 피라미드 유리 구조물을 통해 입장하지만 전시물 대부분은 지하에 있다. WTC의 기반암을 그대로 사용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총면적 1021.93m²(약 309평)인 전시실 맨 아래인 지하 21m 지점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 유골 8000여 점이 안치됐다. 유골을 박물관으로 옮기는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13년 동안 계속해 온 유족과의 유전자(DNA) 대조를 통한 신원 확인을 지속하기 위한 의지가 더 컸다. 검시관 사무실이 이곳으로 옮겨오며 안치된 공간에 추모실도 마련했다. 이곳은 유족만 들어갈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치 종교의식과 부활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라고 행사 모습을 전했다. 실제 그날의 처참했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곳에 재현했다. 탈출하면서 질렀던 비명들과 이후 증언을 담은 음성녹취 파일만 1970개에 이른다. 불타는 마천루에서 수백 명이 빠져나왔던 계단 구조물인 ‘생존자 계단’과 십자가 형상의 철근 대들보 등 대형 구조물까지 옮겨왔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가족과 친구에게 남기기 위해 깨알같이 적은 불탄 메모지와 지갑 사진 등 유품 2380점도 전시됐다.
추모박물관과 광장 건립에는 7억 달러(약 7178억 원)가 들어갔다. 절반이 넘는 4억5000만 달러가 민간의 기부와 성금으로 조달됐을 정도로 국민 성원이 컸다. 연간 운영비는 6000만 달러로 미 알링턴 국립묘지보다 많다.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24달러의 입장비를 받고 기념품을 판매하는 것을 두고 유족들이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박물관 측은 예산 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박물관 옆 WTC 두 동이 있던 자리에는 두 곳의 대형 추모연못이 들어선 추모공원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추모연못에는 2001년 9·11테러 희생자 2982명의 이름이 동판 위에 새겨져 있다. 2011년 문을 연 ‘박물관 체험관’에는 1200만여 명이 다녀갔다. 또 교사 1260명이 현장 체험교육 공간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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