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황작 작전’ 비화 공개
암호명 ‘타이거’ 사업가 맹활약… 중국 넘나들며 반체제인사 빼내
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사태 후 중국 대륙에서 수백 명의 반체제 인사가 해외로 탈출한 것은 ‘타이거’라는 암호명을 쓴 사업가의 숨은 활약 덕분이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6일 보도했다. 홍콩 민주화 단체의 ‘황작(黃雀·검은머리 방울새) 작전’에서 타이거의 활약은 수많은 유대인을 나치 독일의 손을 피해 탈출시킨 ‘쉰들러 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노동 교화소에서 6년을 보냈고 6·4사태 직후 선동 혐의로 4개월간 투옥됐던 유명 화가 가오얼타이(高爾泰) 씨도 타이거 덕분에 자유를 찾았다. 그는 쓰촨푸퉁(四川普通)대에 재직하고 있었으나 항상 자유에 갈망을 갖고 있다가 1992년 몇 달 먼저 홍콩으로 탈출한 동료 작가에게 탈출 의사를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어느 날 뜻밖에도 홍콩에서 온 한 젊은이가 자신의 방문을 두드렸다.
쓰촨푸퉁대는 당시 출입자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했으나 타이거는 폭우가 쏟아질 때 우산을 눌러쓰고 과감하게 진입했다. 사흘간 떠날 채비를 한 가오 씨 부부와 타이거는 자정 무렵 택시를 타고 청두(成都)에서 충칭(重慶), 우한(武漢)을 거쳐 광저우(廣州)로 이동했다. 이후 후이둥(惠東)을 거쳐 홍콩에 도착했다. 가오 씨는 SCMP에 “당시 타이거 등의 영웅적 행위가 역사에 기록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건어물을 판매하는 평범한 사업가인 타이거는 이름과 나이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타이거는 “탈출을 원하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 홍콩까지 탈출시키는 ‘원 스톱 원조’를 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이처럼 탈출시킨 사람은 40여 명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그가 마련한 홍콩 신계(新界)의 한 은신처에는 30명가량이 머물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는 몇 사람 구출한 뒤 사업에 복귀하려 했으나 내가 하는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없어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황작 작전’은 톈안먼 사건 직전 홍콩에서 결성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가 주축이 돼 추진됐다. 지련회는 우얼카이시(吾爾開希)와 차이링(柴玲) 등 톈안먼 운동 당시 학생지도자 등 500여 명을 탈출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이 작전은 1997년까지 계속됐다.
탈출 과정에서 병원 용어 등을 비밀 암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서양 의사가 심장병이라고 말했다’는 ‘임무가 성공적으로 수행돼 무사히 홍콩에 도착했다’는 뜻이고 ‘888’은 ‘선박에 탔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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