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오른쪽)과 오노 히로히토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이 진지한 자세로 대담하고 있다. 두 논설주간은 지난달 19∼2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세 차례 만나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한국과 일본은 내년 6월 22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다. 정치적으로 역대 최악이라는 이웃나라와의 최근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양국 미디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1955년생으로 동년배인 동아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이 지난달 동아일보 본사에서 사흘간에 걸쳐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인식의 차이는 컸지만 한일 관계의 경색을 풀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생각이 같았다. 시기적으로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보고서가 발표되기 전이어서 이에 관한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 ○황호택
1955년생. 198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쳤으며 논설실장을 지내고 2013년 1월부터 논설주간을 맡고 있다.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를 진행하고 있다.
○오노 히로히토(大野博人)
1955년생. 1981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자카르타, 런던 특파원 등을 지내고 2012년부터 논설주간을 맡고 있다. ○ 아사히신문
1879년 1월 창간. 발행부수 740만 부, 기자 약 2400명. 한국 중국 등 아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자유주의(리버럴) 성향의 일본의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지.
▼ 오노 “후쿠시마 이후 ‘원전제로’로 방침 바꿔” 황 “양국 모두 원전 선진국, 협력 강화를” ▼
원자력발전소
▽오노 히로히토=먼저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분들께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싶다. 서울에 와서 바로 서울시청 앞에서 헌화를 했다.
▽황호택=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일본도 3년 전에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했지 않았는가.
▽오노=동일본 대지진에서 반성할 요소가 많았다. 가장 큰 것은 원자력발전소 문제다. ‘안전신화’라고 했지만 사고가 일어났을 때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믿고 있던 것들이 무너졌다. 정부, 대기업, 전문가,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아졌다.
▽황=한국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후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아졌다. 한국과 일본은 대표적인 원전 선진국이기 때문에 안전 분야에서도 서로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노=아사히신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제로’로 방침을 바꾸었다.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과 사회라는 것은 완전할 수 없는데 원자력이라는 시스템은 완벽한 상태를 24시간, 수십 년 동안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제로로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지체하지 않고 제로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황=한국은 지진해일(쓰나미)과 지진이 잦은 일본과 자연 조건이 다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도 원자력발전을 재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부는 원자력발전 현행 수준 동결 방침을 정했다가 증설로 바꿨다. 한국의 원전 정책은 다양한 문제를 고려해 수립해 나갈 것이다. ▼ 오노 “안중근 기념관, 정치적 이용 부적절” 황 “安의사 추앙은 민족 정체성과 직결”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오노=중국 하얼빈 역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큰 위화감을 느꼈다. 이런 움직임은 일종의 정치적 행동인데 옳다고 생각하나.
▽황=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초대 총리이며 일본 지폐에도 초상이 들어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는 침략의 원흉이며 한일 강제병합의 주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역에 표지석을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중국은 더 나아가 기념관을 만들었다.
▽오노=안중근 기념관 건립에 위화감이 들었던 것은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해서가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 그를 의사(義士)로 부르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일본에서도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다양하다. 하지만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에서 기념관을 만드는 것이 맞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일본 한국 중국 사이에 긴장감이 없는 상황이라면 기념관 개관 때 일본 정치인이 참석했을지 모른다. 일본의 보수 정치인 중에서도 그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맥락에서 정치적 상황을 부풀리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황=안중근 의사에 대해 많은 일본인들은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나.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한국과 일본은 전쟁 중이었다. 일본의 침략과 국권 박탈에 대해 나라의 독립을 지키려는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전쟁 중 적국 사령관을 사살한 것과 같다. 안 의사는 한국의 독립투사다.
▽오노=한쪽에서는 테러리스트로 보이고, 다른 쪽에서 영웅으로 보이는 경우는 역사상 매우 많다.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망 씨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씨도 그렇다. 하지만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해 이를 정치적 자원으로 사용하는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황=안중근 의사의 독립 의지를 정치적 자원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은 한국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침략당한 민족으로서 한국인 모두는 안 의사의 애국적 행동에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침략에 앞장섰던 인물을 죽인 안 의사를 존경하고 선양하지 않으면 어떻게 민족의 정체성이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겠나.
▽오노=아사히는 아베 정권이 망언을 하면 비판한다. 그러면서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도 우리는 정권의 행동을 상대화하는 역할을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의 협력이 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인가. 저는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본다.
▽황=아사히신문도 동아일보도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이다. 보편적 대중의 정서와 완전히 유리된 논조를 펼 수는 없다. 다만 우리도 지나치게 일본에 배타적인 움직임이 나타날 때는 경계의 목소리를 낸다. 예를 들어 역사 문제에 관해서도 중국과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건 사안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도 역사 문제가 있다. 한때 만주까지 세력을 뻗었던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는데, 중국은 고구려가 자국의 지방 정부였다며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안중근 기념관처럼 공동의 피해자로서 이해가 일치하는 분야에서만 협력하는 것이다. ▼ 오노 “위안부 피해자 빨리 구제하는게 중요” 황 “日정부 사과하고 명예회복 해줘야” ▼
위안부 문제
▽황=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위안부에 대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의 문제였는데 지금은 국제사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노=일본도 ‘아시아여성기금’ 등을 통해 인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정치적으로 합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한국의 시민단체도 있다. 그 의견을 여론으로 봐도 좋은가.
▽황=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이 문제를 끄집어내기까지 ‘내가 위안부였다’고 공개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나이도 젊고, 남편과 아이가 있다 보니 사회의 눈을 의식해서였다. 지금은 생존해 있는 분들이 몇 분 남지 않았다.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일본 정부가 배상하고,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줄 필요가 있다.
▽오노=일본 총리가 사과 편지까지 보냈는데 거기에 더 무엇을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황=그것은 일본의 내부 사정이다. 잔혹한 전쟁범죄를 경험한 분들이 살아 있는 만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글렌데일 시에는 위안부 소녀상도 설치됐다.
▽오노=위안부 문제를 일종의 국가적 자존심 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싸우며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위안부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한시라도 빨리 구제하는 것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이 문제를 두고) 국가적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은 이상하다.
▽황=이것은 여성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일본의 우익 세력은 피해자의 인권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명예를 우선시하는 것 아닌가. 일본으로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의 인권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일제강점기에 인권 침해를 당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 오노 “문화교류로 정치대립 완화해야” 황 “평창-도쿄 올림픽 협력으로 윈윈 기대” ▼
한일 협력
▽황=일본에는 한류가 있지만 한국에는 일류(日流)가 있다. 정치, 역사, 영토 문제에서 다투는 경우가 많지만 문화의 세계에서는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서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일본인도 우리와 같은 정서를 갖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때까지는 지배자로서의 일본, 아버지 세대로부터 들은 일본인 상밖에 없었는데 일본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오노=그렇다. 저는 음악을 좋아해서 유럽에 있을 때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콘서트를 몇 번이나 들으러 갔다. 정 씨는 북한에서도 연주활동을 했다. ‘정치가 문화를 절대화하면 사람들 사이에 대립을 불러오지만, 문화가 정치를 상대화하면 대립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끼리는 역사 문제가 얽혀 있어 사이좋게 지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중국에서 일본에 한자나 불교가 전해질 때 한국이 통로 역할을 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한국이 일본을 통해 서구문화를 배웠다. 한일 관계는 역사에서 주고받기를 거듭했다. 식민지 지배에 의한 피해도 있기 때문에 과거사를 거론하면 일본에 대한 감정은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흐름은 끝났고 한국과 일본이 서로 협력하는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노=정치가 문화를 절대화하면 사람들 사이의 대립을 초래한다고 말했지만, 역사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의 역사는 말씀하신 대로지만 자국의 역사에 집착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문제가 세계화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적인 해결책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황=한국에서 나의 윗세대는 일본이 한국보다 20년 앞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도쿄 올림픽이 1964년, 서울 올림픽이 1988년이었다. 그러나 한국도 경제대국이 돼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오노=2018년에 평창 올림픽, 2020년에 도쿄 올림픽이 열리니 2년 간격이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원만하지 않은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작지 않다.
▽황=국교 50주년이 되지만 한일 협정을 둘러싸고 한국에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견해가 모두 있다. 긍정적인 면은 한국의 시장경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오노=평창과 도쿄 올림픽이 열릴 때 양국이 연습장을 서로 제공하자는 제안도 있다.
▽황=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다. 일본은 나가노 겨울올림픽의 경험도 있기 때문에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창 올림픽 때 도쿄 올림픽 홍보를 많이 해서 윈-윈 관계가 되면 좋을 것이다. 이번에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미디어뿐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오노=(한국어로) 감사합니다.
●황호택 대담을 마치고…
갈수록 냉랭해지는한일 관계… 회복위해 미디어의 역할 중요
오노 히로히토 주간과 가장 뜨겁게 토론을 한 대목은 안중근 의사였다. 오노 주간은 동북아의 기류가 민감한 시기에 중국과 한국이 손을 잡고 하얼빈 역에 안중근 기념관을 만드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질문을 오랜 시간 표현을 바꿔가며 했다. 오노 주간이 문제를 제기하고 내가 방어하는 형식이었다. 오노 주간은 아사히신문이 사설에서 안중근 기념관 건립을 비판적으로 논했다고 말했다. 결국은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이토 히로부미와 안 의사에 대한 평가의 차이에서 생기는 문제였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다른 신문들과 달리 용기 있게 비판했다. 그러나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에 이르러선 진보적인 신문도 일본인의 평균 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듯했다.
한일 관계가 지금 ‘최악’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정치 분야를 제외하면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가끔 반일(反日) 시위가 벌어져 일본 상품을 파는 가게를 공격하는 일도 있다. 한국에는 반일 시위가 없다. 한류의 고향을 찾아온 일본 관광객들은 어디 가나 환대를 받는다. 일본에는 혐한(嫌韓) 시위가 있지만 이를 비판하는 시위도 있었다. 케이팝의 인기는 여전하다.
두 사람은 한계를 의식하면서도 갈수록 싸늘해져 가는 한일 관계의 온도를 덥히기 위한 미디어의 역할에 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거로 정권을 잡은 정부의 내셔널리즘 정책에 관해서 미디어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글로벌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오노 히로히토대담을 마치고…
국민 정서 반영하는 한국 미디어의 고민… 이해할수 있는 계기
자신과 독자가 살고 있는 나라가 다른 나라와 대립하고 있을 때 기자는 어떤 일을 해야만 할까. 황호택 논설주간과 대담하며 항상 머리에 맴돌던 주제다.
자신의 국가와 정부의 움직임을 가급적 ‘상대화(相對化)’해 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나는 그게 기자의 주요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의 설명은 과장돼 있지 않은지, 자국의 정책은 진정한 문제 해결에 적합한지.
전쟁 전, 전쟁 중, 당시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본 미디어는 ‘상대화’에 실패했다. 자국 정부와 일체화된 주장을 보도하고 말았다. 잊어서는 안 될 뼈아픈 교훈이다.
옛 유고의 코소보 분쟁과 이라크전쟁 등을 취재할 때 미디어가 자국 정부와 같은 시점에서 보도하는 예를 몇 번이나 봤다. 민주주의 국가의 미디어라고 반드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경험에서 보자면 예를 들어 안중근 기념관 건설에 대해 한국 미디어가 자국 정치가를 ‘상대화’하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일본인이라기보다 기자로서 솔직한 느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황 주간이 “침략당한 민족으로서”, “보편적 대중의 정서와 완전히 유리된 논조를 전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한국 미디어가 안고 있는 갈등의 깊이를 살짝 엿봤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담은 총 6시간 남짓. 서로 신경이 곤두서는 장면도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전하고 싶다”, “알고 싶다”는 기분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서로의 고민과 그 깊이를 안다. 그런 노력을 쌓아가면서 조금씩 거리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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