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겠다는 1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선언이 동아시아 역학구도를 단번에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 수 있는 이른바 ‘보통국가’로 변신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카드를 내세우면서 미국을 끌어들였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중국의 힘이 커지는 걸 막으면서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두고 미일이 동맹 강화로 자국을 포위하려 한다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중일, 미중 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3, 4일 방한한다. 미중 간 균형외교를 추구해온 한국 외교가 결정적 시험대에 오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 한국엔 양날의 칼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이 일본 내 미군 기지를 병참기지로 사용하고 미군이 공격받았을 때 일본 자위대가 반격함으로써 한미일 간 군사공조가 용이해진다”고 말했다. “주변국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는 데 플러스 요인이 돼 대북 억제력 측면에서 나쁠 게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일본이 아무 사심(私心)이 없는 상태를 전제로 한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역사를 미화하면서 군 위안부의 존재마저 부인하는 과정에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웠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서도 마냥 동조할 수 없는 처지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미일동맹 차원의 대응을 넘어 세계 어디서나 자위대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대목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미중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국 외교의 입지
중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미일동맹에 의한 중국 포위’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에 부담이다.
시 주석은 아베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방침을 공표한 5월 15일 “대국이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필히 망한다”고 반격했다. 중국 내에선 “한국이 한일-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구도에서 거리를 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중국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쟁 억지력을 높일 것”이라며 중국 견제용임을 드러냈다. 미국은 이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원칙적으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경제력 약화 등 국력 쇠퇴로 아시아에 신경 쓸 여유가 줄어든 미국에 ‘너희 대신 우리가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를 방어하겠다’는 일본의 제안은 수지가 맞는 장사인 셈이다.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과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석희 연세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을 멀어지게 하고 싶은 중국이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중이 협력해 일본 문제에 공동 대응하자’고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시 주석에게 안보 문제에서는 한미일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환영하는 미국, 속내는 복잡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원칙적으로 환영한다는 태도를 여러 번 내비쳤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은 필요에 따라 자신을 방어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 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이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보고서를 내며 한국과 갈등을 빚자 미국도 고심하기 시작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전 세계를 향할 경우 미일동맹의 틀을 벗어나 미국이 정한 전후 체제에 도전하는 양상이 돼 미국에도 부담”이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범위와 성격에 따라 미국이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창수 소장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국에 복잡한 과제를 던졌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공백을 메우면서 동아시아 평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순기능을 극대화하도록 미국과 협력해 일본에 투명한 자위권 운용을 압박하는 외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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