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피케티 신드롬을 둘러싼 글로벌 갑론을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6일 03시 00분


“일관성 없는 데이터, 유리한 것만 적용” 英 파이낸셜타임스
“최근 10여년 가장 뛰어난 경제학 서적” 美 폴 크루그먼 교수

‘피케티 신드롬’을 불러온 책 ‘21세기 자본’을 두고 글로벌 경제학계의 공방이 뜨겁다. 세계적 석학과 언론까지 가세해 보수, 진보 성향에 따라 엇갈린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진보 진영은 300여 년간의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소득 불평등의 과정을 분석한 책에 찬사를 보내는 반면 보수 진영은 자료가 편향됐고 내용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비판한다.

보수적 성향의 정통 경제학자들은 피케티가 주장한 소득 불평등 확산에 따른 자본주의 붕괴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부자 증세’에 동의하지 않는다. ‘맨큐 경제학’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피케티의 주장은 완전히 추정에 불과하다”며 “자본이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다는 점에서 부의 세습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결론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재능이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빈곤이 지속되는 데 있다”며 “가난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 정책,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하지 부자의 돈을 몰수하는 세금정책이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피케티가 소득 불평등의 근거로 사용한 원본 데이터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일관성이 없는 서로 다른 출처의 데이터를 엮었고, 일부 데이터는 의도적으로 유리한 것만 골라 적용했다”고 꼬집었다.

‘피케티 혁명’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10여 년 만에 나온 최고의 경제학 서적”이라고 극찬한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여러 종류의 자료를 인용해 진행하는 연구라면 있을 수 있는 데이터 조정”이라며 FT의 지적을 반박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미국 예일대 교수는 “피케티가 활용한 20세기 초 몇 년간의 데이터에 일부 오류가 있다고 해도 소득 불평등 심화라는 전체적인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고 지지했다.

피케티 또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시계열 데이터를 좀 더 개선할 수 있고 앞으로도 개선될 것”이라며 “일부 자료를 수정해도 부의 불평등이 심해진다는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FT가 너무 사소한 것을 지적해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지난해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될 때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올 2월 말 미국에서 영문판이 발간되면서 단번에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다.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 시위 열풍이 불며 ‘1 대 99 사회’에 대한 분노를 경험한 미국 사회가 뜨겁게 반응한 것이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5월 동아일보가 주최한 ‘2014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참석해 “미국처럼 금융계나 기업 경영진에 대한 분노와 긴장 관계가 존재하는 한국에서도 피케티의 책이 잘 팔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실러 교수는 “피케티의 주장이 100% 맞다고 할 순 없지만 세계적인 피케티 열풍은 우리의 삶이 더 불평등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준다”며 “다만 책의 인기도 일종의 버블(거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케티의 책은 이달 중 한국어판이 발간된다. 이어 10월 초에는 FT가 지적한 데이터 오류와 피케티의 반론 등을 다룬 ‘피케티 패닉(Piketty Panic)’도 출판될 예정이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피케티#파이낸셜타임스#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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