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일관계는 나빠질 만큼 나빠져, 더 이상 악화될 수 없다고 여겼는데 그건 착각이었나 보다. 성숙한 한일관계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새삼 느낀다.
일본 정부가 롯데호텔을 상대로 보이콧(불매운동)에 들어갔다. 일본 외무성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분간 주한 일본대사관 관련 행사에 롯데호텔을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구체적인 보이콧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7월 롯데호텔이 일본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행사 장소 제공을 거부한 데 따른 ‘보복 조치’로 보인다. 일본 외무성은 주한 대사관의 공식 행사뿐 아니라 외무성 관계자가 업무상 한국에 출장 올 때도 롯데호텔 이용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호텔은 7월 11일 서울 소공동 지점의 사파이어볼룸에서 자위대 창설 60주년 행사를 열기로 예약을 받았다가 행사 전날 일본대사관에 장소를 제공할 수 없다고 통보한 바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은 당시 서울 성북동 대사관저로 장소를 옮겨 행사를 치렀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이 정말 자위대 행사 차질에 따른 보복이라면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당시 롯데호텔이 행사 취소를 결정한 것은 단순한 반일 감정에 따른 ‘국민정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위대 행사를 열 경우 호텔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와 안전을 위해 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조치이기도 했다. 만약 호텔이 행사를 강행했다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발생했다면 그때는 무모하리만큼 돈벌이에 눈이 멀었다고 호텔을 비난하지 않았을까. 일본 정부와 아무 관련도 없는 다른 국적의 투숙객들이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다.
일본 정부가 어떤 호텔을 이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이 롯데호텔에 타격을 주기 위한 보복 목적의 보이콧이라면 일본은 민간기업과의 관계조차 근시안으로 대처한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래서야 성숙한 한일관계가 설 자리가 있겠나. 일본이 보이콧 사실을 비공개로 하지 않고 언론에 밝히는 것도 ‘우리에게 맞서는 자는 사기업이라도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위압적인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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