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의료관광 전쟁]
<5·끝>호텔식 서비스로 차별화 -말레이시아 프린스코트메디컬센터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프린스코트메디컬센터(PCMC)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널찍한 로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호텔리어들이 입을 법한 자주색 유니폼을 걸친 병원 직원들은 병원에 막 도착한 손님들의 캐리어를 카트에 싣고 분주히 움직였다. 로비 한가운데 위치한 안내 데스크에서는 금발의 한 외국 여성이 영어와 중동어가 능통한 직원에게 병실을 안내 받고 있었다.
호텔식 병원을 표방한 PCMC 내부는 곳곳이 호텔을 연상시켰다.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더 올라가니 회색 카펫이 깔린 복도가 이어졌다. 하얀 대리석이 깔려 있던 1층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드 임란 총 압둘라 PCMC 영업총괄매니저는 “카펫은 환자들에게 안락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걸을 때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때 신체로 전해지는 충격도 완화시켜 준다”면서 “카펫에 잘 생기는 먼지를 줄이기 위해 청소를 철저히 하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호텔식 서비스로 승부수
호텔 분위기는 병실까지 이어졌다. 1인실 병동에 들어서자 창밖으로 쿠알라룸푸르의 대표 명소인 452m 높이의 트윈타워가 내다보였다. 말레이시아 여행 도중 버스 충돌 사고로 넓적다리가 부러져 입원했던 영국인 로널드 모리스 올덤 씨(61)는 “이곳에서 2주 동안 호텔 룸서비스 같은 서비스를 받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병원의 모든 1인실 병동엔 소파와 29인치 평면TV, 미니냉장고, 개인화장실은 물론이고 헤어드라이어, 샤워 가운, 커피포트 등이 기본으로 구비돼 있다. 매일 아침 무료로 배달되는 신문을 받아볼 수 있으며 식사시간엔 ‘식사 메뉴판’이 제공돼 샌드위치, 간단한 닭고기 요리 등 다양한 음식을 고를 수 있다.
33만 m²(약 10만 평)가량 되는 부지에 6층 높이로 넓게 지어진 병원엔 총 277병상뿐. 국내 대형병원들은 같은 평수에 두 배 이상의 병상을 두는 데 비해 PCMC는 공간을 여유 있게 사용하고 있다. 277병상 중 응급병동, 중환자실 병동을 제외한 160개가 호텔방 같은 1인실이다. 올덤 씨는 “침대 바로 옆에 설치된 동그란 버튼을 누르면 영어가 능통한 간호사가 30초 만에 달려와 혈압 체크를 해주거나 필요한 약 등을 챙겨 줬다”며 “하루 세 끼 식사, 간단한 간호 서비스 등이 포함된 1인실의 하루 체류 비용이 10만 원도 채 안 됐다”고 말했다.
○ 서비스는 5성급, 가격은 4성급
말레이시아의 가격 경쟁력은 해외 환자들을 끌어오는 주된 요인. 올덤 씨가 양질의 서비스를 받으며 머물렀던 병실 비용은 하루 220∼600링깃(약 7만∼19만 원). 물론 특실 같은 경우 40만∼50만 원대에 이르지만, 전체 병실 수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본 1인실 비용은 20만 원을 넘지 않는다. 이는 싱가포르 래플스 병원의 기본 1인실 비용이 578싱가포르달러(약 48만 원), 지난해 기준 한국의 빅5 병원의 1인실 비용이 평균 약 32만 원인 것 등을 감안하면 매우 싼 가격이다.
진료비도 주변국보다 저렴하다. 미국에선 9000만 원가량 드는 관상동맥우회로수술(CABG) 비용이 말레이시아에선 2000만 원 정도로 4분의 1 수준이다. 태국이나 싱가포르의 CABG 비용이 2400만∼3300만 원가량인 것과 비교하면 말레이시아는 인근 국가보다 35%가량 덜 드는 셈이다. 시아말라 라오 PCMC 응급의학과 교수는 “물가가 싸 수술비는 저렴한 편이지만 의료진은 미국 영국 등 해외 경험이 많은 실력파”라고 강조했다.
○ 동남아 의료관광 맹주 싱가포르 위협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의료관광의 맹주인 태국과 싱가포르를 급격히 추격하고 있는 중이다. 말레이시아 헬스케어 여행위원회(MHTC)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말레이시아로 들어온 연간 해외 환자는 약 7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5%나 상승했다. 말레이시아보다 의료관광 사업에 일찍 뛰어든 태국과 싱가포르의 해외 환자는 각각 연간 10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연간 해외 환자는 약 21만 명으로 말레이시아의 3분의 1 수준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의료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병원 리모델링과 확장 등에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병원들이 세계적인 평판을 높일 수 있도록 국제인증을 받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의료서비스 인증을 받기 위해 드는 비용은 이중 공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켈리 앙 MHTC 본부장은 “말레이시아는 그 밖에도 병원 홍보를 장려하고 비자 연장을 용이하게 하는 등 해외 환자 유치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을 없애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 양방+한방… 한국만의 특화전략 필요 ▼
환자유치 전초기지 역할 페낭 섬… 공항세 면제 등 다양한 稅혜택으로 의료관광 싱가포르 아성에 도전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의료 관광의 맹주인 싱가포르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관광 자원과 저렴한 진료비를 결합한 해외 환자 유치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무대가 바로 말레이시아의 페낭 섬과 조호르바루 지역이다.
교통의 중심지이자 말레이시아의 주요 관광지인 페낭 섬은 말레이시아로 오는 해외 환자의 70%가 넘는 환자가 찾는 곳이다. 이 섬을 찾는 해외 환자의 80%가량은 인도네시아 환자다.
페낭보건협회장 첸 콕 에웨 씨는 “이들 중 대부분은 말레이반도 서반부와 인접한 인도네시아의 메단 지역에서 오는 환자”라며 “메단에서 페낭으로 하루 2번 운항하는 비행기는 매번 만원”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메단 지역에서 오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공항 이용료를 받지 않는 등 세금 혜택도 부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해외 환자의 10%가량을 차지하는 싱가포르 환자도 더 많이 자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싱가포르 바로 북쪽에 있는 말레이시아 항구도시 조호르바루에 대규모 리조트를 조성하고 있으며 이르면 5년 내에 완공될 예정이다.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 국민이 간단한 입국 절차만 밟으면 자유롭게 드나드는 도시로, 주말이면 싱가포르 국민이 식료품 값이 싼 이곳으로 원정 쇼핑을 가기도 한다. 한국 성형외과 등 우리나라 병원들도 해외 의료진에 방어적인 싱가포르 대신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제주도가 제주WE호텔 등을 중심으로 의료관광 휴양지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있다. 제주의 자연과 의료산업을 접목한 헬스케어타운 조성 공사가 2018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동남아 국가에 비해 관광자원도 풍부하지 않을뿐더러 연계 여행사업 등 의료관광 인프라도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동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해외환자유치지원실장은 “관광과 의료를 접목한 서비스로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을 갖기는 힘들 수 있다”며 “미국의 텍사스 메디컬 시티처럼 의료와 연계된 숙박시설, 교통 서비스 등 각종 연계 시설들이 밀집된 클러스터 형식의 지역을 조성하는 것도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한국 같은 경우 병원 인근에 한의원을 함께 두는 등 한국만이 특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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