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터 잿더미… 경찰은 출동도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7일 03시 00분


美 퍼거슨市 한인상점 피해 현장
10곳 피해… 2곳은 방화로 전소, 인력부족 경찰 “알아서 대피하라”

퍼거슨 시의 소요 사태로 유리창이 깨지고 약탈당한 한인 미용 상점 ‘뷰티 월드’. 한겨레저널 제공
퍼거슨 시의 소요 사태로 유리창이 깨지고 약탈당한 한인 미용 상점 ‘뷰티 월드’. 한겨레저널 제공
“올해 8월 마이클 브라운 사망 직후 일어난 1차 흑인 소요사태 때보다 상황이 안 좋다. 경찰은 관공서를 지키느라 정신이 없으니 우리 같은 주민은 보호를 요청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24일(현지 시간)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백인 경찰관 대런 윌슨(28)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 뒤 퍼거슨 시가 폭동사태에 휩싸이면서 한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퍼거슨 시 인근 한인들은 2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소요사태와 한인 피해 상황을 전했다.

퍼거슨 시내 한인 상점 중 절반가량인 10곳이 피해를 입었다. 이 중 2곳은 시위대의 방화로 상점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소됐고 8곳은 상점 건물이 부서지고 약탈을 당했다. 조원구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은 “브라운이 사망한 장소에서 500m가량 떨어진 웨스트플로리선트가가 소요사태의 중심이며 이곳에 한인 상점들이 몰려 있다”고 전했다. 웨스트플로리선트가에서 자동차로 10분가량 떨어진 곳에서 미용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 회장은 “피해 한인들은 오랫동안 일군 생활의 터전이 망가져 이를 수습하느라 거의 공황(패닉) 상태에 빠졌다”며 “인명 피해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 “시위대, 총으로 가게문 부수고 난입” ▼

美 한인상점 피해현장
브라운 사망장소 인근에 상가 밀집… 흑인 상대로 미용품-휴대전화 판매
CNN “주민들 자경단 구성해 지켜”


전소된 곳 중 하나인 한인 미용 상점 ‘뷰티 타운 플러스’는 24일 오후 시작된 시위대의 방화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다. 이 상점은 브라운이 사망 전 들러 담배를 훔쳤다고 알려진 ‘퍼거슨 마켓 앤드 리커’ 바로 옆에 있어 대배심 결정 뒤 시위대가 가장 먼저 몰려들었다.

역시 전소된 것으로 파악된 한인 휴대전화 상점 ‘오 와이어리스’도 브라운이 사망한 지점에서 1.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피해가 컸다. 8월 1차 소요사태 때는 시위대가 유리창을 깨고 약탈해 간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시위대가 총으로 철제 바리케이드를 쏴 부수고 들어온 사례가 많았다고 지역 한인들은 전했다.

피해를 입은 나머지 8곳의 한인 상점은 모두 미용 용품을 취급하는 곳으로 브라운이 사망한 지점에서 2∼3km 떨어져 있다. 이곳들은 방화는 모면했지만 당분간 운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뷰티 월드’는 시위대의 폭력으로 유리창이 깨지고 가발 등 판매 물품 상당수를 약탈당했다. 이 과정에서 상점 내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그나마 남은 물건도 대부분 물에 젖어 못 쓰게 됐다고 피해 상점을 방문한 세인트루이스 지역 한인 매체인 ‘한겨레저널’의 신오진 기획실장이 전했다. 시위대의 폭력으로 반파된 상점 ‘레미 뷰티’는 출입문이 떨어져 나가 합판으로 임시 문을 만들어 붙였다.

문제는 퍼거슨 경찰이 관공서 경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시위가 더 격화된다면 한인 상점들이 추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력이 부족한 퍼거슨 경찰은 시위 전부터 상점 주인들에게 “알아서 대피하라”고 경고를 내렸다. 퍼거슨 시 외곽에서 미용 상점을 하고 있는 이수룡 세인트루이스 한인미용업협회 회장은 “퍼거슨 시내에는 경찰이 거의 투입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경찰이 와서 ‘대배심이 불기소 결정을 내려 소요사태가 일어나면 알아서 피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CNN은 주민들이 총을 휴대하기 시작했다며 사우스플로리선트로 등 일부 지역에선 자경단이 구성돼 주택가를 지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또 약탈 피해를 입은 ‘뷰티 월드’ 옥상에는 자동소총을 소지한 무장대원이 배치됐다고 전했다.

현재 한인 상점들은 대부분 영업을 중단하거나 문을 열었더라도 밝은 오후 시간까지만 영업을 하고 있다. 김경식 세인트루이스 제일장로교회 목사는 “일부 상점들은 방범장치를 강화했지만 약탈이 일어나도 경찰이 출동하지 못하고 상점을 밤새 지킬 수도 없어 그냥 일찍 귀가해 무사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지었다. 이어 “그나마 브라운 가족이 시위대에 자제를 호소해 폭력 시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퍼거슨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인들은 흑인들과 사이가 좋았으니 시위대가 빨리 이성을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26일부터 추수감사절 연휴가 시작되는 만큼 시위가 잦아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퍼거슨#한인상점#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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