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유럽의 소국’ 그리스가 국제 금융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이른바 ‘그렉시트’(Grexit·Greece와 Exit의 합성어) 우려가 커지거나 완화될 때마다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2011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존 재정위기가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 번져 간 것처럼 또 다른 ‘재앙’이 재발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의 중심에는 올해 41세의 알렉시스 치프라스(사진)가 있다. 그리스 제1야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를 이끌고 있는 그는 ‘트로이카’라 불리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를 향해 50% 이상의 대규모 부채 탕감과 긴축 완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는 “그리스 경제가 6년간의 불황을 거친 뒤 지속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구제금융을 받은)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선 “긴축은 실업자 150만 명을 양산했고, 300만 명을 가난으로 몰아넣었다”며 “집권하면 빈곤층에게 식량 주택 전기를 즉각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2400억 유로의 구제금융 제공 당시 그리스에 제시된 의무 이행을 강조하는 독일 등에서 이미 그에게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만큼 그가 강성이라는 의미다.
오랜 긴축에 지친 그리스 유권자들도 트로이카와 독일을 향해 할 말을 다 하는 치프라스에게 열광하고 있다. 시리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 우파 성향의 집권 신민당을 앞서고 있어 25일 실시되는 조기 총선에서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시리자가 제1당이 되면 대표인 치프라스가 총리직에 오를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는 1974년 그리스 군사정권 붕괴 이후 최연소 총리가 된다.
선거가 치러지기 전부터 ‘미래 권력’인 치프라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리고 있다. 주말인 10일 치프라스가 언론 인터뷰에서 “시리자가 집권하면 3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의 상환 의무를 지킬 것”이라고 말하자 12일 개장한 그리스 아테네 증시는 4%대의 급등세를 보였다. 아울러 국채 수익률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내가 정권을 잡아도 유로존 탈퇴는 없다. 사마라스(현 그리스 총리)의 퇴출만 있을 뿐”이라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실제로 트로이카와 독일 등 채권국들도 치프라스가 집권하더라도 그렉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유로존의 구제금융 관계자는 1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치프라스가 막상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의 입장을 누그러뜨릴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현재 선거 판세는 치프라스와 그가 이끄는 시리자에 유리한 상황이다. 12일 발표된 그리스 스카이TV와 마케도니아대 여론조사에서 시리자는 31.5%의 지지를 얻어 27%에 그친 집권 신민당을 4.5%포인트 차로 앞질렀다. 현재로선 시리자가 제1당이 돼 다른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AP통신은 12일 판세가 긴축에 반대하는 시리자와 긴축을 유지하자는 신민당 양강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면서 시리자가 압승을 거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치프라스는 1974년 7월 28일 그리스 군부 독재가 무너진 지 사흘 뒤에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국립 아테네공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으며 공산주의 청년조직에서 활동하면서 그리스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본격적인 정계 입문 시기는 2006년이다. 그해 아테네 시장 선거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정치권에 이름을 알렸다. 치프라스는 아테네 시장 도전 3년 뒤인 2009년에는 좌파 정당 시리자의 대표로 선출됐다. 2012년 실시된 총선에서는 시리자를 그리스 제2의 정당으로 키워 냈다.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를 존경해 자신의 아들 이름에 게바라의 본명인 ‘에르네스토’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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