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정직 6개월 중징계 받아… ‘상습적 거짓말’ 의혹 불거져
“취재-보도 윤리에 심각한 경종”
“그는 NBC 뉴스에 대해 수백만 미국인이 갖고 있었던 신뢰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그의 거짓말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에게 오늘 아침 이 순간부터 무급 정직 6개월 조치를 내립니다. 이번 징계는 가혹하지만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3대 지상파 방송국 중 하나인 NBC 스티브 버크 최고경영자(CEO)는 10일 동시간대 뉴스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자사 메인 뉴스 진행자 브라이언 윌리엄스(55·사진)에게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간판 앵커의 추락이 알려지자 방송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라크전 취재 경험이 있는 윌리엄스는 그동안 방송에서 수차례 무용담을 이야기했었다. 지난달 30일 방송에서도 ‘이슬람국가(IS)’와 중동 상황을 보도하면서 “2003년 3월 내가 탄 헬기가 이라크군에 피격됐지만 미군이 극적으로 우리를 구출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방송을 탄 직후 당시 헬기에 동승했던 승무원들로부터 “윌리엄스는 사고 후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피격된 헬기는 다른 헬기였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급기야 윌리엄스가 7일 “내가 착각했다. 순간적으로 미쳤던 것 같다”고 사과하면서 “며칠간 물러나 있겠다”고 밝혔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윌리엄스가 2006년 방송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취재 당시 홍수 속 피해자 시신을 봤다”고 주장한 내용도 거짓이라는 설이 제기돼 그의 거짓말이 ‘상습’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데버러 터네스 NBC뉴스 사장은 10일 “윌리엄스의 발언을 조사하는 내부 조사단을 만들어 사실 관계를 엄중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미 방송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대학 중퇴 학력으로 방송계의 대표적 간판스타가 된 윌리엄스는 그 자체로 입지전적 인물. 1993년부터 NBC에서 일하면서 저녁 메인 뉴스와 탐사보도 프로그램 ‘록센터’ 등을 진행하며 초고속 출세 가도를 달렸다. 지난해 5월에는 러시아로 날아가 당시 러시아에 망명 중이던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과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윌리엄스는 2011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혔고 지난해 말 5년 재계약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가 진행해온 메인 뉴스 시청자는 약 1000만 명대로 알려져 있으며 연봉도 무려 1000만 달러(약 109억 원)에 이른다.
미 언론계는 이번 기회에 기자들의 취재 및 보도윤리에 대해 심각한 자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징계는 미국 방송뉴스 업계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번 경우처럼 앵커에 대한 신뢰도와 진실성이 의심받은 적이 없었다”고 경영진의 징계 조치를 지지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주류 언론도 비판에 동참했다. 마크 펠드스타인 메릴랜드대 언론학 교수는 “윌리엄스가 그런 거짓말을 하고 어떻게 시청자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6개월 정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NBC는 위기에 빠졌다. 저녁 메인 뉴스는 물론이고 다른 대표 프로그램들까지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 이번 파문이 길어져 시청자와 광고주의 발길이 끊어지면 NBC가 아예 윌리엄스를 파면할지 모른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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