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한평생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특혜이자 모험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세계적인 뇌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 미국 뉴욕대 신경과 교수(82·사진)가 19일 뉴욕타임스(NYT)에 죽음을 앞둔 심경을 공개했다. 그는 ‘나의 삶’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9년 전 수술받았던 안암(眼癌)이 간으로 전이돼 최근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며 “남은 인생을 정리하려 한다”고 밝혔다. 미국 누리꾼들은 “삶을 담담하게 반추하는 노(老)지식인의 글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됐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의 삶’은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이 사망 직전 하루 만에 완성한 짤막한 자서전 제목이다. 색스 교수는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평소 흠모하던 철학자 흄처럼 인생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온화한 성격의 흄과 달리 격정적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기질 탓에 인생을 관조하고 욕망을 내려놓기가 힘들다”며 글을 시작했다.
색스 교수는 “마지막 날을 앞두고 보니 지나온 인생의 조각조각을 큰 틀에서 바라보게 된다”며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살아 있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차원의 통찰력을 기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전히 중동 분쟁, 기후 변화, 경제적 불평등 같은 화두를 고민하지만 그건 이제 미래의 영역”이라며 “남은 시간 자신과 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일만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감사하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며 “그간 지인들과 주고받은 교감, 글쓰기, 세계와의 소통 등에 특히 감사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색스 교수는 문학과 의학을 접목한 작품으로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린다. 1933년 영국에서 태어나 과학자 집안에서 자란 그는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지식을 쉽게 풀어쓴 책으로 주목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전염병의 일종인 ‘잠자는 병’에 걸린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깨어남’, 알츠하이머·정신분열증을 앓는 환자들의 내면을 그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대표적이다. ‘깨어남’은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1991년)로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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